[자유무역 협상 어떻게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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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의 칠레 방문으로 석달째 교착 상태인 한.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이 재개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번 방문은 최근 칠레가 관세 철폐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고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선 데 대한 진의를 파악하기 위한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초 남미 방문일정에 없던 칠레가 갑자기 추가됐고 협상을 계속하자는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져 칠레의 반응이 주목된다.

외교부는 18일(현지시간) 양국 통상장관회담을 통해 농산물 예외 여부까지 포함한 모든 의제를 놓고 논의하되 최소한 차기 (5차)협상 일정에 합의한다는 전략인데 칠레의 입장 변화가 없을 경우 협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협정 재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농산물 분야다. 전기동.동광석이 전체 대한(對韓) 수출의 75%를 차지하는 칠레로선 당초 FTA를 통해 자국 농산물 수출을 늘리겠다는 전략이었다.

칠레의 농산물 관심품목은 2백63개인데, 이는 국내 전체 농업 생산액의 52%에 해당하는 주요 품목들로 관세 장벽이 없어질 경우 국내 농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외교부는 사과.배 등 지극히 민감한 일부 품목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상이 타결된 이후까지 관세 철폐의 예외로 하자는 입장이다.

칠레는 그동안 네차례 실무협상에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지난 5월 알베아르 외교부장관 명의의 서한을 보내 예외없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자국산 일부 공산품도 예외를 두겠다던 칠레가 이를 놓고 각 산업부문에서 입장 조정이 어려워지자 다시 원칙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고 분석했다.

답답해진 것은 한국 정부다. 1998년 11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제의, FTA 체결을 합의한 이후 3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못하는 협상을 현 정권의 임기 안에 어떤 형태로든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WTO 가입국 중 체결된 FTA 등 경제블록 협정이 1백70여개나 되는 등 지역주의 바람이 거센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일본만 FTA를 맺지 않아 자칫 세계적 추세에 고립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농산물 예외품목을 축소하려 해도 내년 지방선거와 농민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양국간 교역규모가 15억달러 수준인 칠레와도 농산물 몇 품목 때문에 FTA를 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국제적 신인도와 시장개방 의지에 부담이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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