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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문화재정책' 시리즈를 읽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문화의 세기, 선진국가 진입. "

새 천년을 맞으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를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우리를 시험이라도 하듯 단군 이래 최대의 발굴이라던 풍납토성 발굴유적이 새천년 벽두부터 비전문가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목도해야만 했다.

문화재위원회가 다급하게 소집되고 전례없는 전체회의를 수차례 거듭한 끝에야 문화재 지정이 결정되고 더 이상의 훼손을 막을 수 있었다.

누구도 그 보존 타당성을 부정할 수 없는 유적이었건만 발굴유적 하나를 지키려 그만한 산고를 치러야 한다는 데, 문득 우리의 이런 모습이 정상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 접한 중앙일보의 '표류하는 문화재정책' 심층기사에서 그간의 궁금증을 풀게 됐고 우리의 문화유산이 얼마나 척박하고 열악한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는지를 알고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전국의 발굴허가를 네 사람이 맡고 전국의 국보.보물 및 동산문화재를 세 사람이 담당한다는 사실은 차마 알고 싶지도, 알려져서도 안되는 사실이 아니었나 싶다.

또 눈 앞에서 유적이 파괴되어도 복구비용으로 쓸 수 없다는 예산은 도대체 현실에나 맞는 것인지, 보상할 준비도 없이 국민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일을 얼마나 더 계속하라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재 행정인력의 대폭적 보강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능과 수요에 맞게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그래서 담당자들이 현장 확인도 없이 산적한 서류 처리에만 골몰하는 현실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문화재 보존은 철저한 현장 조사와 객관적 가치평가에서 출발한다.

둘째, 유적 파괴에 대비할 수 있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예산구조를 갖춰야 한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그 지역은 더 이상의 개발행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땅 속에 있는 문화유산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그 지역의 매입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지매입은 문화재 보존의 근본적이고 유력한 수단이 되며, 그에 필요한 예산은 오늘의 현실에서는 다다익선이라고 보여진다.

이런 예산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계획적으로 집행할 수 있으려면 기금과 같은 재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선조의 지혜와 얼이 담긴 문화유산이 주민들에게 혐오시설처럼 대접받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 많은 기금들이 존폐의 기로에 있음을 알지만, 현세대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미래세대의 정신적 풍요를 가꾸어갈 재원이므로 보다 전향적인 검토와 판단이 요청된다.

셋째, 국민의식 개혁을 가져 올 큰 정책을 만들자. 어차피 모든 문화재를 공공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문화재를 소유하고 있는 국민 자신이 선량한 관리자의 책무를 다하도록 고무하고 그로부터 보람이 주어지는 여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최적의 보존을 위해 문화재를 흔쾌히 기증한 사람에겐 그만한 사회적 평가와 보상이 주어지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또 성숙해진 시민의식과 문화욕구를 바탕으로 대중적이고 실천적인 문화유산 보호운동을 개발하고 또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문화재의 관리주체이면서 '표' 를 의식해 급속한 개발만을 내세우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도 하루빨리 바뀌어야 할 것이다.

문화재는 미래를 창조하는 지침이다. 이제 문화재를 모르는 행정과 경제는 한계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 더이상 미봉책으로 대처할 일이 아니다. 낡은 틀을 유지하는 차원의 논의는 반성과 청산의 의지를 의심케 할 뿐이다. 겸허한 반성 위에 새 틀을 만들자.

한영우 문화재위원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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