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딸 롱다리 만들려면 사춘기 전에 운동 시켜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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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대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 아래가 몽톡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서 아무리 잘 봐야 겨드랑이 밑에서 넘을락말락 크지 않는 점순이를 보며 애 태우는 주인공의 심정을 표현한 부분이다. 말로는 키는 안 커도 좋으니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실은 딸이 공부도 잘 하면서 예쁘고 늘씬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우리 아버지들의 마음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보다 더 간절하다.

요즘 여성들의 체형이 바뀌고 있다. 20년 사이 평균 키가 5cm 이상 커졌다. 그런데 앉은 키는 별로 변하지 않아 몸통 길이는 그대로인데 다리길이만 길어졌다. 롱다리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양극화는 빈부 격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의 키와 키에 따른 팔다리 길이의 차이에도 있다. 소위 ‘롱다리’와 ‘장롱다리’. 다른 집 아이와 달리 크지 않는 아이를 보면 속이 새카맣게 변한다.

그러다 보니 키가 크는 것을 책임진다는 성장클리닉의 광고에 솔깃해진다. 어떤 병원에서는 초경을 늦추게 해서 키를 더 키울 수 있다고도 한다. 정말 그럴까 싶기도 하고 그런 약물을 쓰면 나중에 커서 아이들에게 괜찮을까 걱정이다.

그런 고민을 가진 부모라면 딸아이에게 운동을 시켜야 한다. 그것도 사춘기 이전에. 왜냐하면 일주일에 3일 이상, 하루 1시간 이상, 적절한 강도의 체중부하 운동이 초경을 지연시키고 키는 물론 날씬한 체형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초경은 평균 12~13세에 시작되며 그 시기를 결정짓는 데는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대부분 여자 운동선수들은 일반인보다 초경연령이 1.5년에서 2년 정도 늦어지는데 연구 결과에 의하면 초경 전에 운동을 시작한 경우나 초경 시기가 지난 이후에 운동을 시작한 경우나 모두 초경이 늦어진다.

운동선수들은 초경이 지연되어 성숙이 늦어지면 성장판이 닫히는 것도 늦어져서 체형이 바뀌게 된다. 다리가 길어지고 골반이 좁아지며 키에 비해 체중이 덜 나가면서 체지방은 적어진다. 물론 이런 변화가 운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들이 되기 때문에 초경 지연은 운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면 아예 발레댄서와 체조 선수들처럼 초경 이전 연령부터 심한 훈련을 시키면 더 확실하지 않을까? 물론 운동량이 많으면 야위어지게 되지만 지나친 저체중과 낮은 체지방률은 성장 저해와 함께 정상적인 월경 시작조차 방해하는 원인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만일 16세가 될 때까지 월경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산부인과에서의 정밀진단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원인을 고려해야 겠지만 생식계통의 미성숙이나 난소기능부전은 나중에 임신능력과도 관계가 있으므로 전문가에 의해 초음파 검사나 호르몬 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

운동은 시키라면서 심하게 하면 안 된다니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요령은 체지방을 조절하는 것이다. 체지방은 월경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월경 불순을 일으키는 체지방량의 부족 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16~18% 이하에서는 월경이 안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너무 낮지 않도록 체지방률을 잘 유지하면서 적정 강도의 체중 부하 운동을 하면 초경을 다소나마 지연시켜 성장과 날씬한 체형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초경 시기에 비만한 딸을 둔 부모라도 걱정하지 마시라. 많은 연구자들이 운동을 하면 성장판이 닫히는 것도 막고 체지방이 줄면서 훨씬 키가 더 크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젖살이 빠지면서 뼈로 간다는 할머니들의 말씀이 우스갯 소리만은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의 초경 지연에 대한 설명은 운동 측면에서만 살펴 본 것이다. 하지만 월경은 체지방과 체중 변화뿐만 아니라 가족력, 염색체 이상, 2차 성징의 발달, 약물 섭취와 심리적 스트레스, 식이습관, 생식계통의 질병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다. 화성인 남자인 필자가 보기에 금성인 여자는 너무 복잡하다.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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