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상처 남긴 코스닥 우회상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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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법인이 유형 자산의 35%에 해당하는 자료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며 감사의견 거절을 표명했다. 쓸모 없는 자료만 복사해다 준 것 아니냐.”

31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네오세미테크의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대표이사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0월 코스닥 상장사인 모노솔라를 합병해 우회 상장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4000억원. 코스닥에선 27위다.

잘나가는 듯하다 대주회계법인의 감사의견 거절로 코스닥에서 상장폐지 위기에 처하자 주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일부러 엉터리 자료를 줬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개발비와 감가상각비 처리를 놓고 회계법인과 의견차가 컸다는 오명환 대표의 설명에도 주주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네오세미테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날 주총에선 ‘벼랑’ 끝에 내몰린 코스닥 기업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회상장 전 모노솔라의 주주였다는 한 주주는 “네오세미테크에 대해 지금까지 의구심이 많았다”며 회사가 제시했던 장밋빛 전망에 대해 의문을 보였다. 우회상장에 대한 불만을 말한 것이다. 우회상장은 매출액이나 자기자본 비율 등 형식 요건만 심사한다. 기업공개(IPO)와 달리 인수한 회사의 재무적 안정성과 사업 전망, 경영 안정성 등에 대한 정보는 평가 대상이 아니다. 그 탓에 기존 주주들은 확실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그저 안갯속을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러다 피해를 보기도 한다.

회사 입장에선 상장 뒤 서둘러 성과를 내려다 보니 탈이 났다는 반성이 나왔다. 이 회사 오명환 대표는 “외형 성장에만 치중하다 내실을 구축하지 못했다”며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회계법인도 도마에 올랐다. 우회상장 전 감사를 맡았던 인덕회계법인이 적법하게 감사를 했는지, 아니면 감사의견을 거절한 대주회계법인이 너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 것인지 확인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우회상장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우회상장을 하다 덜커덕 사고를 내고 퇴출 당하는 기업이 나오곤 했다. 올해 조금 더 늘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우회상장에서 비롯한 풍파의 일차적 책임은 역시 기업에 있다. 기존 상장사를 인수해 쉽게 쉽게 기업공개를 하고, 그러는 사이 주가를 띄워 머니게임을 하려는 기업 말이다. 이런 비난이 억울하다면 기업 스스로 답을 제시하는 수밖에 없다. 투명한 회계 시스템을 마련하고 재감사나 이의신청 등의 절차를 밟아 스스로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네오세미테크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하현옥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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