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제약업계 리베이트 관행 쌍방 처벌 없이 사라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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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약값을 어떻게 하면 내릴 수 있을까 지난해부터 고민해오다 리베이트 쪽에서 묘책을 찾았다. 의약품을 파는 제약사와 사들이는 병의원·의사들 사이에 오가는 리베이트를 문제 삼은 것이다. 구매 권한을 상당 부분 쥔 의사에게 관행처럼 지급되던 리베이트가 건강보험상의 약제비 상승을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리베이트를 주다 걸리는 제약사의 의약품에 대해 보험 약값을 깎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리베이트 관행 움직임이 잦아드는 듯했다. 그러나 오랜 관행은 무서웠다. 일부 병원과 의사는 제약사에 리베이트를 암암리에 요구했다. 이에 시장을 뚫기 힘든 중소 제약사들이 섣불리 응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복지부는 지난달 16일 약을 싸게 구입한 병원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은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개선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를 통해 리베이트가 사라질 걸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는 수법이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지부는 가장 쉬운 해법인 쌍벌 규정의 도입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 복지부가 그동안 의료수가를 낮게 책정한 뒤 의사들의 리베이트 수수 관행을 사실상 묵인해 온 때문에 쌍벌 규정만큼은 의사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연유다.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처벌하는 것이 쌍벌 규정이다. 제약업계에 리베이트 근절 의지가 있어도 의사들이 요구할 경우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게 시장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적발된 대부분의 의사는 경고받는 정도로 끝났다.

리베이트 관행이 끊이지 않자 복지부는 개선안에 쌍벌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을 넣었다. 하지만 또다시 첩첩산중이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확률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개선안이 원안대로 시행되려면 1단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나 8명의 소속 위원 가운데는 전직 의사·약사 협회장 등이 포진해 있다. 표결이 아니라 합의로 통과해야 하는 만큼 복지부의 적극적인 노력 없이 쌍벌 규정을 관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리베이트 받은 의사를 처벌하는 제도가 시행 중이고, 프랑스에서도 3600여 명의 감독원을 전국에 배치해 리베이트 제공자와 수수자를 똑같이 처벌한다. 복지부가 쌍벌 규정 도입에 적극 나서야 궁극적 목표인 약제비 인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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