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재개' 환경단체 화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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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승리의 기쁨이 1년 만에 분노로 변했다. 환경단체들은 지난해 6월 5일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나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강원도 영월 동강댐 건설 계획 백지화 선언을 크게 기뻐하며 환영했다.

생태계 훼손과 석회동굴로 인한 댐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며 동강댐 건설에 반대했던 환경단체들은 우리나라 환경운동 역사에서 드물게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1년이 지난 현재,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새만금 사업 재개 결정에 절망감을 보이고 있다. 갯벌 훼손과 담수호 수질오염, 경제성을 들어 지난 3년여 동안 반대 운동을 벌여온 환경단체들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결과다. 정권퇴진 운동까지 선언할 정도로 충격과 무력감에 빠져 있다.

20여개 환경단체는 이번 환경의 날 기념식에 불참키로 했다. 대신 4일부터 일주일간 '폐업' 에 들어간다. 사무실을 비우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폐쇄한 뒤 거리에서 시민을 상대로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했다.

5일 오전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환경없는 환경의 날' 행사를 연다. 낮 12시에 서울 전역에서 차량시위, 오후 6시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정부 규탄대회와 촛불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6월 한달 동안 재야단체와 학생.노동자.농민단체와 손잡고 새만금 사업 재개 결정을 무효화하는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현재의 분노가 하느냐, 마느냐의 결과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녹색연합 임삼진(林三鎭)사무처장은 "동강댐과 새만금 사업의 차이는 찬반 논의가 합리적으로 진행됐느냐 여부" 라고 말했다.

동강댐의 경우 찬성쪽이나 반대쪽이나 극단적인 대립을 배제하면서 잘못된 주장은 철회하는 등 합의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만금 사업의 경우 이미 시작된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선입견에 빠진 정부가 경제성 평가방법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견해를 받아들였다고 이들은 말한다.

특히 국무조정실이 환경부에 수질예측을 여러 차례 반복해 요구한 것은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좋은 결과' 를 유도한 것이란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다.

환경운동연합 양장일(楊將一)사무처장은 "동강댐 백지화처럼 환경단체의 호응이 예상되는 결정은 대통령이 직접 밝히고, 반발이 예상되는 새만금 재개 결정은 총리실에 떠넘긴 것이 분노의 원인" 이라고 말했다. 동강댐이나 새만금 모두 환경단체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나 정부가 각기 다르게 대응해 전혀 다른 상황을 낳았다는 것이다.

새만금 사업 재개 결정을 계기로 환경단체 내에선 정부와의 관계를 새로 설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지난달 29일 정부내 환경 관련 위원회에 참여 중인 민간위원들이 새만금 사업재개에 반발, 탈퇴를 선언했다.

楊처장은 "과거 민주화 노력을 감안해 시민단체가 현 정부에 협력한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정부위원회에 다시 들어갈 이유가 없다" 고 말했다.

林처장은 "일부에서는 '틀을 깰 수는 없지 않으냐' 고 지적하지만 지금은 이성적.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상황" 이라며 "정부가 후회할 정도까지 싸움을 벌여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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