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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신세를 벗을 수 없다면, 철저하게 개가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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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요즘 교육비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만, 제가 바로 그런 학교에서 행정실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서무과장으로 불렀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나름 지역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사립학교입니다만, 우리 학교의 재산 이사장과 교장도 이번에 문제가 된 어떤 학교처럼 비리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썩어 있습니다.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래도 이만큼 나를 키워줬는데 안면을 몰수할 수도 없고, 또 이 나이에 갈 곳도 없고, 결국 휘둘리면서 오늘도 비리 대행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나마 요즘 교육비리로 시끄럽다 보니 조심을 하는 바람에, 제가 나서야 할 일이 줄어든 걸 위안 삼으면서 말이죠. 그런데, 갈등이 많이 됩니다. 이러다 나도 걸려드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떨칠 수 없고요. 이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A : 실장님께서는 벌써 비리에 발을 깊숙이 들여 놓으셨군요. 지금 발을 뺀다? 글쎄요. 쉬워보이진 않네요. 저들이 당신을 순순히 놔줄지도 의문이고요. 실장님께서 처한 상황은 스스로도 정의 내렸듯이 ‘질곡’이 맞습니다. ‘질곡’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죠? ‘몹시 속박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고통스런 상태를 끊으려면 당연히 결단이 필요할 겁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은? 물론, 그만두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부분에서부터 고민을 하고 있네요.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죠. 일은 계속하고 싶다는 말인데,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현재의 직장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어 보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은 ‘자폭’입니다. 비리를 폭로하고 새 삶을 얻는 일이죠. 그런데 이 경우에 당신도 그만둬야 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직장생활 존속이라는 관점에서는 결과적으로는 위의 대안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계속 일하길 원하는 당신에게는 별 실익이 없다는 뜻, 되시겠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은 대안은? 당신이 선택한 바로 그 대안, 그냥 입 꾹 닫고 주저 않는 길입니다. 네! 지금으로서는 그 길밖에 달리 대안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울한 현실이지만, 일단 현실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저들을 꼼짝없이 옭아맬 수 있는 증거자료를 낱낱이 수집하고 정리해두는 일이 그것입니다. ‘나도 저들처럼 더러워지라는 말이냐’고 반문하시지 마십시오.

시장에서는 이미 당신을 그들의 하수인으로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들보다 당신을 더 질 낮은 인간으로 볼 지도 모릅니다. 주인이 물라면 아무나 물어대는 ‘멍멍이’급으로 본단 말입니다. 아니라고 주장해봐야 개소리일 뿐이니, 자꾸 해명을 해대진 마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개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바에야 철저하게 개가 되라! 이것이 오늘 조언해드리고 싶은 내용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혼자서만 ‘토사구팽’ 당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자~ 당신이 알뜰하게 모은 증거자료는 요모조모 의외로 쓸모가 많습니다. 첫째, 저들이 당신을 팽‘시키려고 할 때 막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앞서 ’이만큼 나를 키워줬는데 안면을 몰수할 수도 없고‘라며 약한 모습을 보인 바 있습니다만, 아마 저들은 언제라도 당신쯤은 날려버릴 마음의 준비가 돼 있을 겁니다.

조직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되면,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대신해서 옷을 벗는 모습, 많이 보셨지요? 주군을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는 그들! 그 이면에는 군신간의 신뢰가 뒷받침된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신뢰는 무슨?, 그냥 대신 고생하고 돌아오면 뒤를 봐주겠다는 묵계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뒤를 봐 주겠다? 실제로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전설을 우리는 많이 주워듣고 있지만, 글쎄요? 그보다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안면을 몰수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는 것,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믿을 놈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리 있는 놈도 생각보다 흔치 않고요.

둘째, 경찰이나 검찰에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제출할 수 있는 알리바이 자료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저들의 죄를 입증하는 자료를 검찰에 넘겨주는 대신에 당신의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거래 수단, 법률 용어로 플리바게닝(plee bargaining)의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알리바이를 제시한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저들의 죄를 입증할 결정적인 자료를 갖다 바쳐도 마찬가집니다. 처벌을 면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죠. 하지만, 정상이 참작돼 형량은 줄어들 수는 있다는 겁니다. 그게 어딥니까?

셋째, 그만두고 난 뒤에라도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간여했던 그 일들과 관련한 수사는 당신이 학교를 그만두고 난 한참 뒤에도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하더라도 당신을 늘 쫓기는 기분으로 살아야 할 텐데, 증거자료라고 알뜰하게 보관하고 있으면 기댈 언덕이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위안은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불의를 보고 참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기로에서 당신은 참는 쪽을 택했을 뿐만 아니라, ‘마지못해’라고 하는 수사를 붙이긴 했지만 기꺼이 공범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실장으로 총애까지 받았습니다. 영혼을 팔아 출세를 산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범죄사실이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 일이거나 드러나더라도 당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밖에 없는데, 후자의 경우에 지금부터 대비하라는 것이 오늘의 결론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도 ‘콱 잡아넣어 버렸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긴 하지만 말이죠. 쩝~!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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