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선의사커비전] 갈수록 더 빛나는 설기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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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집트에서 열린 LG컵 4개국 대회에서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동국은 능력이 출중하지만 분데스리가에서 많이 뛰지 못한 탓인지 쉽게 지치는 것 같다" 고 평가했다.

반면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에서 활약하고 있는 설기현에 대해서는 "유럽축구를 이길 힘과 능력을 고루 갖춘 훌륭한 선수" 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설기현(22).

이제 히딩크가 구상하고 있는 어떤 전술에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선수로 떠올랐다.

1월 1일 '한국의 히바우두' 설기현을 만났다. 그는 지난해 여덟경기에 출전해 4골.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훌륭하게 유럽무대에 적응한 뒤 한국에 왔다.

세시간의 만남 뒤 설기현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축구밖에 모르는 성실한 선수' 였다. 그는 휴식차 잠시 귀국했지만 모교인 강릉상고에서 후배들과 훈련했다. "세계의 경쟁자들이 뛰고 있는데 나만 쉴 수 없다" 며 그는 한시도 다른 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설기현은 벨기에 진출 초기에 부상과 아시안컵 공백으로 소속 팀에 기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2002년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해 해외에 나온 만큼 나 혼자 몸이 아니다" 는 각오로 그는 뛰고 또 뛰었다.

프랑스어.네덜란드어.독일어 등 3개 국어를 쓰는 벨기에에서 적응하기 위해 어학 공부도 열심히 했다.

한인교포가 적어 문화 차이에서 오는 외로움은 그에게 큰 짐이었다.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빅리그(이탈리아.스페인.독일.영국)에 대한 꿈을 꾸었다" 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벨기에로 온 것에 후회는 없다. 유럽축구 적응과 실력 보완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빅리그 진출은 그 다음 문제" 라며 나이에 비해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동국.안정환.고종수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 그는 "그들은 오래 전부터 인정받은 선수들이다. 그러나 과거는 필요없고 현재가 중요하다. 한 경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기에 신경을 안쓴다" 고 말했다.

이번에 이집트에서 만난 그는 4개월 사이에 훨씬 더 성장해 있었다. 그는 "한국선수들은 외국팀(특히 유럽팀)과 경기할 때 주눅이 든다. 막연히 상대가 강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많이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 자신감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발상에도 큰 변화가 있다" 고 강조했다.

열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설기현은 고교시절 합숙비나 훈련비를 면제받을 때 괜히 눈치가 보였고 용돈이 없어 주말에 친구들이 전화를 해도 받지 못한 아픔이 있다.

그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팀 훈련 외에 자나깨나 개인훈련에 몰두했고 그 결과 지금은 유럽무대에서 당당하게 주전으로 뛰고 있다.

지난해 32평짜리 아파트를 어머니께 장만해 줄 정도로 효심이 극진한 그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국민들에게 멋진 골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본지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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