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對 언론 소송 줄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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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언론사간 쟁송(爭訟)시대' 에 접어든 형국이다.

다른 언론사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해 온 관행이 깨지면서 타사 보도가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거액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언론사 사이에 마찰이 있어도 막후 대화창구가 가동돼 원만히 해결되곤 했으나 그런 채널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 청구 금액 많고 입장도 완강=MBC와 유시민씨가 지난 23일 조선일보를 상대로 9억원의 손배배상청구소송을 낸 것을 비롯, 올들어 언론사가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모두 4건이다.

1990년 이후 언론사간 소송은 약 10건. 이 가운데 5건이 지난해 말 이후 정부의 언론개혁 추진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또 일부 언론사는 소송을 전제로 타사의 보도 내용을 검토하고 있어 소송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조선일보가 지난 6일 한겨레를 상대로 70억원을 청구한 것을 비롯해 청구 금액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언론사간 자존심 싸움으로 이어지면서 입장도 단호하다. 익명을 요구한 MBC 관계자는 "명백한 오보와 악의적인 보도에 대해 일침을 가해야 한다" 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고 밝혔다.

또 동아일보 관계자는 "정당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지만 왜곡 보도에 대해서는 끝까지 바로잡겠다는 것이 기본 방침" 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법 안영률(安泳律)부장판사는 "상대 언론사의 내밀한 부분을 언급하는 바람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다른 사건과 달리 화해가 쉽지 않다" 고 밝혔다.

◇ 무엇이 문제인가=언론계 일부에서는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법 절차에 따라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을 탓할 일이 못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소송 사태가 자칫 언론의 영역을 스스로 축소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보도 내용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경우 언론의 비판기능이 약화되고, 결국 국민 입장에서는 알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소송은 전략적 소송(SLAPP)의 성격을 띠고 있다. 검찰.경찰 등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잇따라 소송을 내 가뜩이나 언론 자유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사간 싸움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 대책은 없나=배금자(裵今子)변호사는 "논평에 대해서는 비판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특히 공적인 이슈와 공인과 관련된 보도에서는 법원이 언론의 자유와 알권리 차원에서 명예훼손을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박형상(朴炯常)변호사는 "언론사간 갈등은 먼저 매체를 통해 충분히 공방을 벌이고 소송을 내기 전에 냉각절차로 언론중재위나 신문윤리위원회 등의 조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했다.

▶전략적 소송(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정치인이나 기업인 등이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되는 의견을 보도한 언론사나 청원에 앞장선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명예가 훼손돼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소송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의 보도와 반대 의견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송을 이용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몇개 주는 피고가 SLAPP임을 주장하면 법원은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조사를 벌여 사실로 인정될 경우 각하 결정을 내린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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