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지독해서 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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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1호선 전철을 탔다. 책을 읽으며 가을을 느끼기엔 차안이 최고다. 차안은 따뜻했고 책을 잡은 마음은 설랬다. 창밖엔 붉고 노란 잎으로 물든 산줄기가 흘러갔다. 참 예쁜 가을이다. 넘치는 바람이다. 낙엽들이 하염없이 휘날려갔다. 저 바람따라 나도 어디론가 휘날려가고 싶었다.

죽어라 일하지 않으면 살아내기 힘든 인생.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종종 세월의 허망함을 느낀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 거지. 또 스스로에게 뻔한 질문을 던지고 만다.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몰라 사는 것 같다. 한없이 깊은 사랑이 그리운 계절. 사람들은 느닷없이 만나고 헤어진다. 또 느닷없이 잊혀진다. 그런 사실이 참 견디기 힘들다. 그러면서 또 사랑을 한다.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은 더욱 빛난다. 빛날 뿐 아니라 때로 마음까지 치료된다. 일거양득. 의사가 따로 없군. 칼 메닝거가말했던가? “사랑은 그것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치료한다”고. 때로 우리는 병적일 정도로 사랑에 매달리곤 한다. 누구나 사랑받은 나날의 따스한 기억에 위로받고 힘을 얻어봤기에 무슨 중독처럼 사랑을 갈망하는 것만 같다.

이렇게 많은 생각이 떠밀려갈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후배의 전화였다. 애교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철 달리는 소리에 묻혀 들려왔다.

“선배, 나보고 어떤 사람이 ‘너처럼 사랑스러운 여자는 처음’이래. 난 이 말에 끌려가. 난 아무래도 아부에 약한가 봐.”

“누구나 그런 말에 끌려가. 다 아부엔 약하지. 나 좋단 사람이 최고지 뭐.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여주인공도 처음 만난 남자가 한 말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란 한마디에 끌려갔어. 남편과 자식까지 버리고.”

“와, 겁나는 여자다. 어떤 책인데?”

“한스 에리히 노삭이 쓴 『늦어도 11월에는』이야. 불후의 연애소설이 많이 있지만, 좀 독특해. 책 곳곳에 공감되는 글이 많아.”

후배의 말에 나는 문득 남다른 사랑은 겁 없는 사람들이 겁 없이 치르는 게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 신도림을 지났고, 후배와의 통화도 끝났다. 그래, 이 책의 구절 구절들은 일상속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과 흡사했다. 내 느낌은 다른 누구와도 닮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 구절들을 다시 찾아보자.

“일요일이 되면 나는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기를 기대했지만, 늘 여느 날과 다름없는 지루한 아침이 시작되곤 했다(…) 우리는 그때 이미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도대체 이 빈자리는 무엇일까(…) 낮에는 그것도 모른 척 슬쩍 지나쳐 버릴 수 있지만 어스름이 내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두려움도 점점 커지고 쉽게 잠을 이룰 수도 없게 된다. 사람들은 행복은 붙잡아 둘 수가 없다고(…) 그래서 그들은 행복보다 의무에 대해 더 이야기한다.”

여주인공이 집을 나온 것은 행복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다. 미친 듯한 사랑 속에서 행복을 붙잡아 보려고 애썼다. 꼭 사랑이 아니래도 권태에 찌들어 안전하게 사느냐,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느냐는 누구에게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애까지 버리며 망설임 없이 떠날 수 있다는 것. 독종이 아니면 힘든 거다. 어쩌면 절망 끝에서 독종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지. 사랑은 독종들이 피워내는 지독하도록 아름다운 향기가 아닐까. 이 향기에 감동하고 전율하고 그리하여 너도 나도 사랑의 독종이 되고 싶어한다. 정말 사랑엔 공짜가 없는 것 같다.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비싼 보물. 인생에서 사랑이 제대로 오기도, 서로가 사랑을 예쁘게 물들여가기도 힘든 거라 지금 이 시간에 헤매는 자 있으리라.

어느 여자나 보면 차지하고 싶어할 남자 주인공 베르톨트. 그는 작가다. 그가 글을 쓰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었으며 권태로움 때문에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였듯이 사랑은 권태의 늪에서 피워내는 연꽃이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란 말. 누가 이런 말을 듣고 흔들리지 않으랴. 마리안네처럼 모든 걸 박차고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애는 반드시 데리고 나갈 것. 남녀는 평등하지만 연애에 있어선 남자가 여자를 더 원해야 일이 잘 풀린다는 고전적인 연애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강렬한 대시를 받으면 대부분 여자는 넘어가지 않을까. 왠지 오늘 밤 수많은 외로운 남자들은 이 말을 써먹을 것 같다. 그럴 경우 손 한번 잡아주자. 오늘 나도 그 책 읽었다고 말해주자.

“우리가 서로를 안지 않으면 안 되었을 때 나는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그를 안고 있는 동안 그의 얼굴이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잊을 수가 없다. 베르톨트 역시 잊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전 생애 이상의 순간이다.”

사랑의 병적인 동경, 사랑의 도취감 속에서 달콤한 죽음과의 만남, 죽음과 사랑의 영원한 합일. 자아 상실의 시대에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산업사회의 냉엄한 메커니즘에 도전한 인간 비극을 처절하게 대면함으로써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또 한 권의 책. 가타야마 교이치의 소설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에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이어지는 투명한 감동이란 띠지가 붙어있다. 죽은 어머니를 어떤 남자가 30년간 사랑한 사실을 알게 된 이야기가 다른 두 편의 사랑이야기와 함께 전개된다. 마음이 서로 통한다면 만나지 못하는 세월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가 보다. 어느 날 어머니와 헤어져 지구 끝에 살던 그 남자와 어머니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가며 잃어버린 자신의 그립고 먼 사랑을 마주한 살아 있는 자의 미세한 숨결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그토록 풍부한 감정이 내 안에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렇게도 한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앞으로 아무리 살아도 이 이상의 행복은 맛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지금이라는 순간이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 사람과 만난다. 만남 이후의 인생은, 그 사람과 뗄 수 없는 것이 된다. 무엇을 하든, 다른 누구와 살든, 언제나 그 사람이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말지. 만남이란 것은 분명 그런 것이겠지.결국 인생이란 것은 실현되지 못한 것을 위해 있는지도 모르겠어. 실은 많은 신체와 많은 정신으로 인간은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보이는 대로의 존재.”

나는 다시 속으로 뇌까렸다. 가타야마 교이치. 당신은 정말 똑똑해. 참 공감이 가는 명석한 통찰이야. 『세상의 중심에서…』도 참 잘 읽었어. 내 영혼이 더 깊어진 것 같아. 고마워.

그 옛날 온통 논밭이던 화서역 주변. 빽빽이 들어찬 아파트 숲을 지나 어느 덧 도착한 종착지 수원. 햇과일의 달콤한 과육을 씹듯 다시 읽어나간 이 두 책. 정말 잘들 쓴다. 문체가 아름답다. 소설에서 문체를 빼면 뭐가 남을까. 주로 지껄임이 남지 않을까. 그러니 문체가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책들을 안 읽고 이 가을을 어찌 견딜까.

사랑. 신경안정제이자 거울이다.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가 더 명확히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을 갈망하는 건지 모른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사랑을 발명한 건지도” 모르고. 자기 안에 깃든 풍부한 감정, 더없이 큰 행복감. 누가 더 얻고 잃는 것 없이 함께 사랑하고 있는 순간, 행복하면 된다는 느낌. 어떻든 계속 살아가려면 책을 안 읽으면 안 되고 사랑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책도 사랑도 인생을 축제로 만들기때문이다.

신현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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