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IT는 장미’ 가시만 봐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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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말 애플 아이폰 출시 이후 사이버 세상은 유선에서 모바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얼마 전까지 극소수만 이용하던 스마트폰이 이동통신 시장을 확 달구며 ‘올해의 아이콘’으로 떴다. 그런데 이런 좋은 서비스가 IT 강국으로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선 왜 진작 선보이지 않았을까. 정부와 관련 업계가 가시(부작용)가 무서워 장미(스마트폰)를 키우지 않은 때문이다.

몇 년간 정부는 무선 인터넷에 각종 규제를 달고, 관련업계는 서비스 도입을 피하면서 글로벌 트렌드인 모바일 시대를 애써 외면했다. 그 후유증은 한국을 유선 강국에서 모바일 후진국으로 추락시키는 등 고스란히 국가적 손실로 이어졌다. 아직도 모바일 대표 콘텐트인 위치기반 정보는 범죄 악용을 이유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저소득층을 위한 원격 의료나 디지털 콘텐트의 꽃인 온라인 게임은 정부가 부작용을 내세우며 서비스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제약한다. 최근 정부가 IT에 대한 진입 장벽을 하나씩 낮추고, 업계가 부작용에 대한 해소에 나서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글로벌 콘텐트에 폐쇄적이던 한국형 모바일 웹 규격을 없앴고, 금융업계는 스마트폰 금융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IT의 양면성이 극명히 표출되는 게임에서도 ‘청소년 유해’와 ‘산업 육성’ 논란으로 평행선을 달렸던 정부와 업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는 이달부터 게임 중독(과몰입) 대책을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자는 “게임 중독 우려로 국가 경제와 삶의 활력에 기여하는 디지털 콘텐트 산업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게임도 일상 생활과 조화를 이뤄야 산업으로 인정받는다”며 정부의 게임 중독 대응책에 공감했다.

19세기 흥선 대원군의 쇄국주의는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물 안 개구리’ 정책으로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지구촌이 한 울타리이자 단일 생활권인 지금은 더욱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원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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