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질서 '구조조정'] 4.끝 부시 대북정책 새 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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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국제질서' 의지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구도와 최초로 마찰한 곳이 바로 한반도였다. 미.러 스파이 맞추방, 미.중 군용기 충돌 같은 냉전적 상황이 벌어지기 이전에 미국은 이미 대북 대화의 창을 닫아버린 듯한 제스처를 보였던 것이다.

미국은 다시 창을 열어야 하는가. 연다면 언제, 어떤 형식으로 해야 하는가.

부시 행정부 내에선 '대북 정책위원회' 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국무부.국방부.중앙정보국(CIA) 등 관련 부처 실무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만약 대북정책위원회가 결론을 내린다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5월 하순 한국을 방문할 때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미국이 취할 대북정책의 방향에는 몇 가지 변수가 있다. 하나는 북한의 태도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가 진행되는 기간엔 장거리 미사일의 시험발사를 유예한다" 는 베를린 합의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를 대화 포기로 단정하고 시험발사를 재개하면 국면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른 변수는 부시 행정부 내 강.온파간 대립이다. 강경파는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에, 온건파는 국무부에 포진해 있다. 두 그룹은 북한의 변화 양상, 미사일 합의의 검증 방법, 북한의 재래식 전력 등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미 언론은 최근 미.중 정찰기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파월장관의 국무부가 입지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국무부 고위 관료 출신인 조엘 위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요한 변수는 파월 장관 같은 온건파 거두가 대북정책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느냐, 아니면 다른 지역의 이슈를 위해 대북정책 쪽에는 온건론의 탄약을 아끼느냐는 것" 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결국 북한에 대한 재포용(reengagement)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17~18일 조지 부시 전 대통령 기념관이 있는 텍사스 A&M 대학에서 열린 북한문제 세미나에서도 대북 재포용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다수였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중앙정보국.주한미군 쪽 인사들도 포용을 버리고 대결로 가자는 주장은 아니었다. 또 부시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가 결국은 포용을 시작할 것이라고 시사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부시 행정부는 전문가 그룹으로부터 '재포용' 의 압력을 받고 있다. 미 외교협회(CFR)는 지난 3월 하순 동북아시아 전문가 30명의 의견을 모아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한 대화의 재개를 건의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부시 행정부가 국가미사일방위(NMD) 체제 추진 명분인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축소하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을 것" 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USA투데이의 외교전문기자 바버라 셰블린은 "국가안보회의.국방부 관리의 대부분은 북한과의 긴장완화를 바라지 않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그런 이유만으로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이라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조셉 바이든 상원의원을 비롯한 의회 내 민주당 온건파 세력의 압박, 외교협회 등 전문가들의 건의, 국무부의 커지는 목소리, 긴요한 동맹국 한국의 끈질긴 대북대화 주문 등의 전방위 포위를 '부시의 매(강경파)' 들이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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