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충지 사라져 폭력 악순환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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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파타 대원들이 28일 이스라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가자 AP=연합]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27일 밤(현지시간) 한때 '매우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가 일단 위기를 넘겼다.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와 함께 이날 밤 자치정부 청사를 방문, 아라파트 수반을 30분가량 문병한 쿠라이 총리는 "그는 괜찮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라파트의 건강 상태는 여전히 나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측근은 "아라파트가 요르단 암만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랍의 인공위성 TV 알자지라 방송은 "아라파트는 자신의 권한을 대행할 3인의 공동 지도부를 임명하는 포고령을 발동했다"고 보도했다.

◆술렁거리는 팔레스타인=아라파트 수반이 약 2년반 동안 연금당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 자치정부청사 안에는 아흐마드 쿠라이 총리 등 자치정부 관리들이 모두 모였다. 동이 트자 아라파트의 쾌유를 기원하는 수천명의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라말라 청사 주변에는 수백겹의 인간띠가 만들어졌다. 28일 오전 아라파트의 건상상태가 "괜찮다"는 쿠라이 총리의 발표에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장지 놓고 갈등=이스라엘 정부는 아라파트의 신병치료에 대해 최대한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벌써부터 아라파트의 장지 문제를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대립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측은 이슬람의 사도 무하마드가 천상(天上)여행을 했다는 동예루살렘의'하람 알샤리프'에 아라파트를 묻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대하고 있다. 이곳은 유대인 성지인 데다 장례식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점령에 반대하는 엄청난 시위와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팔 비상사태 돌입=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새로운 팔레스타인 지도부와 평화협상을 지속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라파트가 없는 중동은 새로운 혼란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랍 언론들은 "아라파트를 승계할 확고한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내부의 강.온 세력 간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라파트가 27일 지명한 3인 공동 지도부는 하마스 등 주요 무장.정치단체들을 조정할 능력이 없는 형편이다. 이스라엘은 아라파트 사후 자치정부의 붕괴와 대형 폭력사태 발생에 대비, 전군에 비상사태를 내렸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온 아라파트가 사라지면 아랍권도 매우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 아랍권은 이스라엘과의 화해와 대립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과격세력들은 이 기회를 이용, 반정부.반미.반이스라엘 투쟁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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