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대통령 답지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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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부겸 의원

김부겸(경기 군포)의원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그가 28일 대정부 질문에서 '중용과 상생의 정치'를 내세우며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김 의원은 "여당의원으로서 스스로 반성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설득과 자발적 동의가 없으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라며 "우리가 개혁을 하고자 하면서 마치 혁명하듯이 조급하게 덤볐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일에 왜 그토록 서툴렀는지 자성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여당은 여당답지 않고 야당은 야당답지 않은데 '답지 않은 것'은 대통령과 총리도 크게 사정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노 대통령에 대해 "가급적 이념적 문제에 대해서는 한 발짝 물러났으면 좋겠다"며 "그것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적 사안은 가급적 여야와 국회에 맡기고 이념 문제엔 아예 초연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김 의원은 "존경하는 김 전 대통령은 보안법의 최대 피해자였지만 보안법 개폐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없었다"며 "말씀이 없었다고 그분의 생각을 사람들이 모르겠느냐"고 했다. 지난 9월 초 한 TV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당내 의견이 모이기도 전에 보안법 폐지론을 폈던 노 대통령을 김 전 대통령과 비교해 비판한 것이다. 김 의원은 이어 "정책 외에는 호불호를 드러내지 말라"고 했다.

▶ 28일 국회에서 이해찬 총리의 발언에 발끈한 남경필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맨오른쪽)가 의장석으로 올라가 의사진행 발언을 요구하고 있다. 소란이 일자 이종걸 열린우리당 수석부대표가 내려오라며 소리치고 있다. 김형수 기자

▶ 총리 발언과 관련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충돌로 오후 국회 본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조용철 기자

◆"대통령의 메시지는 온화해야"=김 의원은 이어 "대통령의 개혁방향을 확고하게 지지한다"면서도 "지금 중요한 것은 방향과 내용을 담는 메시지이며 대통령의 메시지는 무엇보다 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미국 국민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따뜻한 위로와 호소의 말에 귀 기울이며 고난을 이겨냈다"며 "대통령은 국민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조선.동아일보를 거친 언어로 비판했던 이해찬 총리의 '베를린 발언'도 문제 삼았다. 한나라당 안택수 의원의 사과 요구에 이 총리가 "평소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라며 맞선 것에 대해 그는 "총리답지 않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언론시장 역시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만 강조하면 충분하지, 뭣 하러 특정 신문이 역사의 반역자니 특정 정당이 나쁘다니 하는 말을 했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여야 협력을 강조하면서 국회와 정부, 청와대의 대표자회의를 제안했다. 김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한나라당 의석에서 "잘했어"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반면 열린우리당 의석은 조용했다.

◆여당 내 자성론 표출=재선의 김부겸 의원은 1991년 '꼬마 민주당' 시절 노 대통령을 만난 이래 95년 국민통합추진위(통추) 활동도 함께한 사이다. 지난해엔 한나라당을 탈당, 신당 창당을 주도했고 신기남 당의장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당내에서 중도적.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던 그의 발언은 여당 내 자성론이 국회 대정부 질문 형식을 통해 공개 표출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김 의원 발언에 대해 "노 대통령이 정치적 발언을 자제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상당수 의원들 사이에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김 의원이 할 말을 제대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성향의 또 다른 초선 의원은 "뜻은 이해한다"면서도 "지금은 노 대통령을 도와 개혁 입법을 완수하는 데 힘을 모아야지 분란으로 비춰질 수 있는 발언은 좋지 않다"고 했다. 4대 법안 처리 등 현안이 산적한 향후 국회 운영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내 보수 .온건 세력 모임인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소속 10여명은 이날 비공개 회동을 갖고 다음달 1일 모임의 공식 발족을 결정했다. 안영근 의원은 "현재 안개모 가입 의사를 밝힌 의원은 30여명"이라며 "향후 당내 원리주의자들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천칭'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필우 의원도 "지금은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김정욱.김선하 기자 <jwkim@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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