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프리즘] 식도정맥 파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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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식도정맥파열이란 질환이 있다. 식도정맥이 얇은 주머니 모양으로 울퉁불퉁 불거져나와 사소한 충격에도 잘 터진다. 서둘러 지혈하지 않으면 다량의 출혈로 생명을 위협하는 초응급질환이다.

식도정맥파열의 원인은 대부분 간에 있다. 간경변이 생겨 간이 딱딱해지면 간으로 흘러들어가야 할 혈액이 식도정맥이란 우회로를 통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이다.

간경변으로 식도정맥이 부풀어오른 사람은 딱딱한 음식을 피하는 등 식도정맥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만의 하나 식도정맥 파열로 입을 통해 피가 쏟아져나오면 바로 응급실을 찾아 튜브가 달린 내시경을 삽입해 지혈해주는 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

얼마 전 식도정맥파열로 타계한 전 문화방송 사장 이득렬씨의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음에도 생명을 잃었기 때문이다.

李씨는 평소 간이 좋지 않았지만 불행히도 식도정맥이 불거져나왔는지 내시경 검사를 통해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사고 당일 부인과 함께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에 나섰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딱딱한 군밤을 먹다가 차 안에서 변을 당했다. 서둘러 먹는 군밤은 보통 사람도 목에서 걸리기 쉽다는 점을 생각할 때 군밤이 그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추정된다.

응급실에 늦게 도착한 것도 문제였다. 토요일 오후에 비까지 내려 최악의 교통체증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119 응급구조대에 연락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몇시간 뒤에야 겨우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인 김윤자씨는 쓰러진 李씨를 조수석에 앉히고 비상등을 켠 채 창을 열고 손을 흔들어가며 손수 운전을 했지만 어떤 차량도 양보하지 않았다며 최근 여성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불운이 겹친 셈이다.

간이 나쁜 사람은 자신의 식도가 괜찮은지 반드시 확인해봐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차들이 밀리더라도 응급환자 차량에는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야겠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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