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 '공중충돌' 향후 가상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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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 EP-3 정찰기와 중국 F-8 전투기의 공중 충돌로 야기된 미.중 갈등이 살얼음판 같은 대치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시기가 공교롭다.

미 부시 행정부가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국제질서의 판을 짜려는 시기에 미국 정찰기가 억류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진행과정과 결말은 단순히 미.중간의 힘겨루기 차원을 넘어 부시의 외교적 능력에 대한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의 가능한 전개양상을 세가지로 정리해 본다.

◇ 제한적 힘겨루기=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크다. 미.중 양국은 외교적 공방전을 거듭하지만 시간을 끌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선 숙원사업인 국제무역기구(WTO) 가입과 2008년의 베이징(北京)올림픽 개최를 위해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중국은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첸치천(錢其琛)부총리를 미국에 보내는 등 화해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었다.

따라서 중국은 가장 효율적으로 부시를 골탕먹이고 실리를 챙기는 선에서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부시 행정부로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정찰기와 조종사 24명이 억류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억류상황이 수주일 이상 계속되면 미국의 여론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비난하는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측에 협상을 위해 내놓을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F-8 전투기가 추락했고 조종사가 실종된 점을 들어 미국이 가해자고 중국이 피해자임을 강조해 왔다. 중국의 장쩌민(江澤民)주석은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으로선 자존심이 걸린 문제여서 그같은 해결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미.중 갈등이 결국은 해결될 것이라고 해도 부시 행정부가 이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지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 극적인 전환=미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을 인정하는 현실주의로 돌아서고 중국이 이에 호응해 이른 시일 안에 정찰기와 승무원을 송환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가능성은 크지 않다.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설정한 것은 부시 국방.외교정책의 큰 줄기 중 하나다. 따라서 이를 포기할 경우 근본적인 외교 구도가 흔들린다. 현재 부시 행정부에 강경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중국 군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중국 군부로선 부시 정부의 압박전략으로 강한 위협을 느껴 왔고 전투기와 조종사를 잃어버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 신냉전(新冷戰) 도래=미국이 주중대사를 소환하고 중국에 대한 무역제재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강행하면서 강공 일변도로 내닫는 상황이다. 그 경우 중국도 맞불정책을 쓸 게 뻔하다.

하지만 신냉전 구도를 주도하기엔 갓 출범한 부시의 국내 정치기반이 튼튼하지 않다.

미국이 대북 강경책을 앞세우자 유럽연합(EU)이 독자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나선 것처럼 미국은 최근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아 왔다.

따라서 미국이 신냉전을 주도할 경우 얼마나 국제적 호응이 있을지 의심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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