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상장사들 매출 '상승' 순익 '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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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열심히 벌었지만 손에 쥔 게 적다' .

대표 기업들이 망라된 12월 결산법인의 2000년 영업실적은 이렇게 요약된다. 거래소 상장기업과 코스닥 등록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경상이익과 순이익은 오히려 줄었다.

이런 낮은 수익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경기둔화와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환차손, 깐깐해진 회계감사로 잠재부실이 많이 드러난 탓이다.

그룹별로는 계열분리해 따로 실적을 따져볼 수 있게 된 현대차그룹의 비약이 돋보인다. 반면 형식상 본가인 현대그룹은 현대전자와 현대건설의 막대한 적자로 상장사 전체의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는 3일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감사의견이 거절.부적정인 회사 등을 제외하고 증권거래소 5백13개사와 코스닥증권시장 4백84개사의 지난해 결산실적을 집계한 결과다.

◇ 현대그룹이 발목 잡은 실적〓거래소 상장사들의 매출액은 4백84조8천여억원으로 1999년보다 18.1% 늘었다. 영업이익도 36조4천여억원으로 35.2% 증가했다. 하지만 경상이익은 22.7%, 순이익은 41.5% 줄어들어 수익성이 나빠졌다.

그런데 현대그룹을 제외하면 경상이익은 1.3% 감소에 그치고 순이익은 오히려 4.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그룹은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지만 대규모 대손상각과 채무이자 발생으로 경상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3조4천여억원과 6조1천여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이에 비해 계열분리한 현대차그룹은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1백% 이상 증가하는 등 눈에 띄게 약진했다.

삼성그룹은 매출과 이익이 크게 증가해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사상 처음으로 부채비율이 두자릿수를 기록했으나 그룹 전체 순이익 6조9천여억원 가운데 6조원을 삼성전자가 차지, 다른 계열사들의 실적이 미진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밖에 SK.롯데는 순이익이 50% 이상 증가하는 등 실적이 호조를 보였으나 LG.한화는 반대로 순이익이 절반 이하로 감소해 대조를 이뤘다. 한진.금호그룹은 적자로 돌아섰다.

◇ 코스닥 벤처 선전〓코스닥에선 벤처기업들이 매출과 이익증가율에서 모두 일반기업을 압도해 성장잠재력을 보여줬다. 벤처기업들의 매출은 51% 늘어 일반기업(20.3%)보다 높았고 순익증가율도 22%로 일반기업(6.8%)을 크게 앞질렀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도 일반 기업(2.8%)의 두배를 넘는 6.3%로 높은 수익성을 반영했다.

반면 이른바 '빅4' 가운데 한통프리텔을 제외한 LG텔레콤.아시아나항공.하나로통신은 매출증가에도 불구하고 적자폭이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1백. 6%포인트 높아진 2백35.4%를 기록, 나머지 기업의 부채비율 감소를 빛바래게 했다.

◇ 환차손.주식투자로 이익 까먹어〓기업들의 경상이익과 순이익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말 가파르게 오른 환율 탓이 컸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12월결산 상장사는 지난해 원화가치 하락으로 외환부문에서 3조9천5백79억원의 순손실을 보았다.

한 해 동안 땀흘려 번 당기순이익(8조7천7백92억원)의 절반 가까이(45.1%)가 사라진 셈이다. 회사당 평균 손실액이 79억6천만원이나 됐다. 코스닥 '빅4' 도 1천6백억여원의 외환관련 손실을 기록했다. 또 코스닥 벤처기업의 유가증권 투자손실이 4백53억원으로 본업 밖으로 눈돌리다 수익성 하락을 자초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올들어 금융감독원이 '이번 결산에서 분식을 청산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 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내 상당수 기업이 누적된 분식회계를 털어낸 것으로 보인다. 전기(前期)의 회계 잘못에 대한 수정 규모는 97년 1천억원대였는데 98년 5천억원대, 99년 7조원대로 급증했다. 이번 결산에선 수정금액이 99년보다 더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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