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논두렁·밭둑 헐고 바둑판 농지 조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실향민들 중 일부가 소중히 갖고 있는 북녘 땅 토지문서가 앞으론 소용이 없어질 것이다. "

북한에서 토지정리가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데 따른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남조선은 벌(넓고 평평한 땅)이 많은 곡창지대지만 토지가 개인소유로 돼 있어 토지정리를 할 수 없다. 남조선 사람들이 평안북도 한드레벌에 와보면 깜짝 놀랄 것이고 대단히 부러워할 거다. "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1월 평북 토지정리사업을 현지지도한 자리에서 자랑스레 한 말이다.

金위원장은 이어 "이제는 옛날 지주가 토지문서를 갖고 한드레벌에 와서 자기 땅을 찾고자 해도 찾지 못하게 됐다" 고 말했다.

이로부터 4개월 뒤 평북 토지정리 사업이 끝나자 북한 보도매체들은 '대평원을 방불케 하는 노동당 시대의 새로운 대지가 탄생했다' 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지적(地籍)관계자들은 이북 지역의 토지정리로 지형이 상당히 바뀐 상황이어서 실향민이 자기 토지를 정확히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재일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은 지난달 26일 "지난해 10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황해남도 토지정리 사업이 현재 3만정보(1정보〓1㏊)를 완료한 상태" 라고 보도했다.

북한이 토지정리사업에 나선 것은 1998년 10월로, 올망졸망한 뙈기논.밭이 많은 강원도가 첫 대상지로 꼽혔다.

뙈기논과 밭을 갈라놓는 숱한 논두렁과 밭둑을 정리해 대규모로 구획화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 후 강원도에서 3만정보를 정리한 데 이어 평북(5만1천5백정보).황해남도 등으로 토지정리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북한 농업성 최명현 국장은 지난달 17일 통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3~4년 안에 전국의 토지정리를 끝낼 목표를 세우고 있다" 면서 "토지정리를 한 다음에는 간석지 개간이 목표" 라고 밝혔다.

북한이 토지정리사업에 부여하는 의미는 크게 세가지.

즉 ▶조상 대대로 내려온 봉건적 토지소유의 잔재인 뙈기논.밭 제거▶영농 기계화 실현▶농경지 확대를 통한 곡물 생산 증대 등이 그것이다.

북한은 이 가운데 무엇보다 봉건적 토지소유의 잔재 제거를 중시한다.

북측은 그동안 봉건적 토지소유의 대표적 잔재로 논두렁을 꼽으면서 "이는 지주들이 농민들에게 땅을 떼어주면서 구획을 짓기 위해 둘러친 경계선" 이라고 주장해 왔다.

새로운 농경지 확보도 토지정리의 또 다른 이점으로 꼽힌다. 崔국장은 "토지정리를 하면 1백정보당 7~8정보의 새 땅을 얻을 수 있다" 며 "강원도에서 1천7백여 정보, 평북에서 3천2백여 정보의 새 땅을 각각 얻었다" 고 말했다. 북한은 토지정리사업이 끝난 구역에서 농사를 지을 만한 지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3년간 화학.유기질 비료를 집중 투입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비료 조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동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