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야기] 신문과 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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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배고픈 시절 식량난 해결에 큰 도움을 준 것이 라면이라면 어둡던 시절에 한줄기 빛을 비추기 위해 노력한 것이 신문이다.

신문과 라면은 여러 모로 닮았다. 우선 서민부터 부유층까지 모두 즐겨 찾는 '음식' 이라는 점이 닮았다. 그러다 보니 원가 상승 요인이 있어도 값을 제때 올리지 못하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야 한다.

먼저 40년 가까이 서민층과 애환을 같이 한 라면 얘기를 해 보자.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대다수 농가는 봄이면 끼니 걱정을 해야 했다. 서울 생활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선 한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 을 사먹으려고 줄을 선 모습이 흔하게 목격됐다. 남대문시장을 지나치다 현장을 본 현 삼양식품그룹 전중윤(83)회장은 과거 일본 방문 때 라면을 먹었던 기억을 되살려 식량난 해결의 힌트를 얻었다.

전회장은 상공부를 설득해 돈을 빌려 일본에서 기계 두대와 기술을 도입했다. 마침내 63년 9월 15일 주황색 포장지에 담긴 삼양라면(1백g)이 나왔다.

라면을 시장에 내놓으며 고심한 것이 가격 책정이었다. 굶는 사람들을 먹이려는 당초 취지와 기업 이윤을 절충해 개당 10원으로 정했다. 당시 커피 한잔 값이 35원, 된장.김치찌개는 30원이었다.

삼양라면은 그동안 다섯 차례 가격을 올려 현재 4백50원(1백20g)이다. 38년 동안 38배(중량 증가분 감안)가 오른 셈이다. 63년 이후 올 2월까지 소비자물가지수는 33배가 됐다.

이제 신문 값을 살펴 보자. 라면이 나오던 해 신문 값은 부당 4원(8면)에서 지금은 4백원(40면)이다. 증면을 감안하면 20배가 오른 셈이다.

98년 기준 발행부수 2백만부(1부 40면 기준)의 경우 신문 1면당 제작 원가는 10원 정도(광주대 임동욱 교수 세미나 자료, 용지는 1면당 4원)다. 한부에 4백원이 먹힌다. 1t으로 4천8백부를 발행한다고 치면 부당 용지값만 1백60원이다.

그러나 일간지의 경우 통상 유통 비용 70%를 빼면 1백20원이 본사 수입이다. 광고가 없다면 한부당 2백80원 적자다.

수지를 맞추려면 적어도 하루 5억6천만원어치의 광고를 유치해야 한다. 광고 사정이 나쁘다고 구독료를 무작정 올릴 수도 없다. 더구나 지면을 줄여 적자를 메운다면 어불성설이다. 경제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은 63년 27억달러에서 지난해 4천5백52억달러로 1백69배 성장했다. 그만큼 정보 수요가 커졌다는 얘기다. 혹자는 발행 부수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수요가 있는데 독자를 '정리 해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신문사도 본질적으로는 라면 제조업체처럼 기업이다. 기업은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적자가 나는데 무작정 무가지를 배포할 수는 없고, 사람들이 배를 곯는다고 라면을 공짜로 줄 수도 없다.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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