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옥상 건너뛰고 3층 벽 타고 도주했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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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과 가까운 덕포시장 일대에서 자꾸 음식물이 사라지고 있고 한 미용실에서 현금이 없어졌다는 시민들의 제보를 입수하고 시장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경찰은 김이 도주로를 확보하기 쉬운 복층 건물의 상층부와 옥상을 집중적으로 수색했다. 이는 그동안 김이 건물 옥상을 이용해 도주했기 때문이다. 부산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는 지난 2주일 동안 김의 범죄 행각을 철저히 분석해 그가 범죄 현장에서 가까운 곳에서 은신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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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찰청 소속 장예태 순경이 덕포시장 근처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인 현대골드빌라 옥상 문을 여는 순간 범인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남자가 50㎝가량 떨어진 옆 빌라 옥상으로 몸을 날렸다. 경찰의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장 순경은 “순간적으로 김이라는 직감이 왔다”고 말했다. 장 순경이 주위에 있던 동료 하상욱 순경을 호출하자 이 남자는 곧장 빌라 사이의 좁은 공간을 등과 손발로 지탱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빌딩을 타는 솜씨가 스파이더맨 같았다. 그는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내려갔다.

이때 하 순경은 “길태다”라고 소리치며 장 순경과 함께 계단으로 뛰었다. 계단을 두세 개씩 넘으며 100m 달리듯 했다. 이 모든 게 불과 30초 안에 이뤄졌을 정도로 숨 가쁘게 진행됐다.

김길태가 10일 부산 사상구 삼락동 덕포시장 부근 빌라 옥상서 도주한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틈. [송봉근 기자]

쫓기면서도 김은 여유가 있었다. 땅바닥에 먼저 내려온 김은 뛰지 않고, 유유히 걸어서 주차장 쪽으로 나왔다. 쫓기는 범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술책이었다. 회색 후드 티와 카고바지(건빵바지)에 파란색 마스크를 착용한 김은 그러나 주차장 앞에서 수색 중이던 강희정 경사와 마주치자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옆을 지나던 한 시민이 김의 발 걸려고 했고 김은 넘어졌다. 김은 일어나 시민을 제치고 도주했고 이어 이용 경사가 앞을 막았다. 그는 이 경사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쳐 넘어뜨렸다. 이 경사는 쓰러지며 얼굴에 경상을 입었다. 그러나 곧바로 뒤쫓아온 강 경사가 몸을 날려 김을 제압했다. 주변에 있던 사하경찰서 소속 수색 팀 2명도 합류해 발버둥치는 김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날쌘 김도 4명의 경찰을 이길 수는 없었다. 발견에서 검거까지는 2분에 불과했다. 검거 당시 현장 주변에는 수십 명의 시민들이 나와 검거 과정을 지켜봤다. 한 시민은 자신이 갖고 있던 비디오 카메라로 검거 과정을 찍어 언론사에 제공하기도 했다. 김이 경찰에 제압되자 시민들은 박수로 환호했다. 김의 발을 걸었던 김용태씨는 “김이 뛰어왔고 형사들이 뒤에서 2~3명 쫓아왔다. 그래서 내가 뛰어나갔다. 발을 걸려니까 김이 넘어졌다”고 말했다.

김은 11년 수감 생활 동안 권투와 팔 굽혀 펴기로 몸을 만들었다. 감방 내에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했다. 이 때문에 몸이 민첩했다. 맨손으로 담장을 넘거나 건물 옥상을 뛰어다니는 ‘야마카시’에 능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범행 현장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김이 옥상을 건너 다니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에 김을 발견하기 전에도 수차례 옥상을 뒤졌지만 단서를 찾지 못했다”며 “다른 곳에 은신하고 있다가 경찰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이곳으로 숨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이 발견된 빌라 옥상에는 라면 봉지 등 음식을 먹거나 잠을 잔 흔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동하며 몸을 피했다는 방증이다.

글=부산=이기원·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인포그래픽=그래픽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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