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영재교육 추적조사] 영재가 범재되는 '평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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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朴모(19)씨는 현재 재수생이다. 그러나 1985년 12월만 해도 장래가 촉망되는 영재아였다.

그는 전두환(全斗煥)대통령 정부가 전국에서 엄선한 1백44명의 영재 중 한 명이었다. 세 살때 천자문을 떼었고 초등학교 2년 수준의 수학문제를 풀었다.

초등학교에선 수학경시대회에 나갈 때마다 입상했다. 성적도 뛰어났다. 그런데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공부가 시시하다" 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아는 내용을 가르치고 새로운 게 없다" 는 것이다. 중학교에서는 강제적인 자율학습과 진도위주 수업에 짜증내다 학교생활 전반에 흥미를 잃었다.

朴씨는 어머니(46)의 권유로 지방의 대안학교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는 수학과 과학 분야에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대안학교에서 배워서는 '수능' 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그는 지금 대학에서 정보통신 분야를 전공하기 위해 서울의 한 입시학원에 다닌다. 그의 부모는 "현재의 평준화 교육시스템으로는 아이의 재능을 키워줄 수 없었다" 고 말했다.

본지 취재팀은 85년 청와대의 지시로 문교부.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에서 선발한 영재 1백44명의 명단을 입수, 현재 모습을 추적 조사했다.

소재가 파악된 영재는 66명. 당시 만 3~6세였던 이들의 지능지수(IQ)는 평균 142(상위 0.5% 이내)다. 하지만 영재교육 프로그램이 없어 획일화한 평준화교육 체제에 함몰된 이들은 15년여가 지난 후 수재와 둔재, 모범생과 문제아 등 천차만별의 모습이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거나 재수 중인 영재는 10명 중 한 명 꼴인 11%(7명)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포항공대.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5개 대학에 진학한 영재아는 23명으로 세 명 중 한 명 꼴이다.

올해 한 과학고에서 이들 상위 5개 대학에 63%가 진학한 점을 감안하면 85년 영재들의 진학률은 아주 부진한 것이다. 나머지는 일반 사립대나 지방대.전문대.기능대에 진학했다. 외국으로 이주했거나 응답을 거부한 경우가 9명이다.

조사 결과 85년 영재의 39%는 획일적인 초.중.고교의 수업에 취미를 잃었다. 20%는 학교에서 수업 태도와 튀는 행동으로 교사와 갈등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37%가 고교.대학 입시에서 좌절감을 맛봤다.

그런가 하면 이들 중 37%는 중.고교 때 영어.수학 등 교과목에 대해 과외나 학원 수강을 받았다.

이들은 "영재로 선발된 기억은 있지만 남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아왔다" 고 입을 모았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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