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제왕의 난파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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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떤 사람은 국정이 표류하고 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국정이 완전 난맥(亂脈)상태라 말한다. 미상불 정부.여당 내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표류든 난맥이든 공통된 것은 방향을 제대로 알고 방향키를 확실히 잡은 선장이 없다는 것이다. 방향을 명확히 아는 선장은 배를 표류시키지 않고, 방향키를 단단히 잡은 선장은 항해의 질서를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는다.

*** 정책실패 누구 책임인가

표류든 난맥이든 종당은 난파(難破)의 위협이다. 지금 국민은 난파선에 탄 승객처럼 위기의식.파국의식을 갖고 있다. 하루하루가 늘 불안하고 다가올 날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나라는 '떠나고 싶은 나라' '정이 떨어져버린 나라' 가 됐다.

의보파탄에 교육붕괴, 대량실업에 끝없이 늘어나는 재정적자, 국정조사 한번 못해보는 천문학적 숫자의 공적자금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현대사태가 가하는 파장들, 낙하산에 편향에 무책임 인사, 거기에 지난해 6.15 이후에 보여주는 이념갈등.보혁갈등이 빚어내는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 어디 한군데 의구심이 일지 않는 곳이 없고, 어느 한곳에 상처가 깊이 파이지 않은 데가 없다.

이 모두 정부 정책의 실패 탓이다. 그 탓으로 국고만 끊임없이 새어나고, 그 새어나는 국고를 국민이 혈세로 충당한다. 왜 국민은 열심히 일하는가.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해고위협을 간단없이 당하며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해답은 오직 하나, 실패한 정부의 실패한 정책에 세금을 대기 위해서다.

지금 어느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어느 국민이 그로 해서 땅을 치지 않는가. 그래서 이민박람회가 말해주듯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나 공통된 답은 '국내 정치상황이 싫어서' 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실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정부도 여당도 아니고 대통령에게 있다. 여당 스스로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 이라는 대통령의 정치행태에 있다. 어떤 역사든 제왕의 특징은 '눈이 멀고 귀가 머는 것' 이다. 아무도 제왕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아무도 "노" 라고 말해서, 그 누구도 "잘못됐다" 고 대답해서 제왕의 분노를 사려하지 않는다.

그 분노의 대가는 직권면직이다. 그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는 제왕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예스맨들만 있다. 그래서 예부터 천 사람의 "예, 예" 보다 한 선비의 "악 악" 이 낫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권위주의 대통령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역사상 최단시일 내 산업화를 이룩할 수 있었는가. 1990년대 이후의 대통령들과 도대체 어떤 차이가 그같은 성취를 가능케 했는가.

그 차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소대장이든 중대장이든 관리를 해본 관리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형태든 대학교육을 온전히 받아본 교육경험이다. 관리는 어떤 관리든 위기 관리며 딜레마 관리다.

이 관리경험이 있는 사람과 투쟁경험밖에 없는 사람의 차이는 오직 하나, 국가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차이와 할 수 없다는 차이다. 대학교육이라는 교육경험을 온전히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남의 말이 내 말보다, 비판.반대의 소리가 칭찬.지지의 목소리보다 정책 결정에 더 도움이 되고 더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는 차이와 알지 못한다는 차이다.

*** 비판 소리도 귀 기울여야

뿐이랴. 지금 언론에서 비판의 소리는 적이 되고 반대의 소리는 악으로 낙인된다. 개혁정책이 잘못되고 있다고 비판하면 반개혁론자로 지목하고, 대북정책이 수정돼야 한다고 비판하면 반통일론자.비평화주의자로 몰아붙인다. 언론 기능은 이런 저런 조사로 제압되고 축소된다.

조선조가 왜 법으로 간관(諫官)제도를 두었는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임금의 잘못을 말하고 백관의 비리를 밝히라고 한 것이다. 그래야 체제가 지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 전통사회의 국가관리 정치행태보다 더 뒤떨어지고 더 치졸한 정치행태가 지금 이 정부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난파선의 승객이 되고 있다는 공포심에 젖어있다.

송복 <연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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