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다시 읽기] '과학 혁명의 구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지금까지 우리는 과학 관계 서적을 선뜻 고전으로 여기지 않았다. 고전하면 주로 인문학 서적으로 인식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도 전문학술서로서는 꽤 알려져 있지만, 좀더 폭넓은 사람들을 위한 고전으로 취급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요즘 일상생활에서 '패러다임' 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이미 그것은 식자층에서 쓰는 술어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흔히 쓰이는 대중적 용어로 자리잡았다. 오늘 아침에도 전철 안에서 한 고등학생이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구!"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흔히들 쿤의 이론이 자연과학 이외의 분야에서 더욱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학.음악.미술.정치 등 인간 행위의 역사가 패러다임적 변화 과정을 겪는다는 데서 오히려 쿤이 과학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쿤의 독창성은 다만 그때까지 과학 특유의 방식으로(지식의 누적적인 과정으로) 변화 발전한다고 인식했던(아니면 믿었던) 과학을 '패러다임' 의 개념과 방법론으로 설명했다는 데 있다.

자연과학 이외의 분야에서 그 이론에 크게 호응한 것은 쿤이 빌려온 연장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을 때, 원주인이 연장의 쓰임을 새삼 발견하고 좋아한 격이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일상에서 패러다임이란 말을 친근하게 쓰는 것을 설명해주는 열쇠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쿤은 학제적(學際的) 연구가였다. '과학 혁명들(우리말 제목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원제의 복수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의 구조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의 개념 자체가 전문적 연구의 대상이지만, 쿤의 첫번째 공적이 학제적 연구라는 것은 오늘날 널리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두번째 공적은 과학에 대해 과학자 자신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인식변화를 유발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며 '순수' 하기까지 한 과학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던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이는 "과학지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창출하고 사용하는 과학자 그룹들의 특별한 성격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는 그의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과학자 공동체' 에 대한 관찰과 과학자들이 정상과학의 패러다임 안에서 매력을 느끼며 성과를 위해 진행하는 '마무리 작업(mop-up work)' 에 대한 지적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유전공학의 성과에 대한 가치 논쟁에서, 데이터 해석에 개입하는 과학적 패러다임, 과학지식의 사회문화적 구성 등을 거론하는데, 이에 쿤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공적으로 보아, 그의 책은 전문서적일뿐만 아니라 폭넓은 사람들을 위한 고전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쿤의 책은 1962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햇수로 올해가 40년째 된다. 고전의 옛 고(古)를 염두에 두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젊은'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추측을 해본다. 미래의 세대들이 '고전 다시 읽기' 를 기획한다면 쿤의 책이 반드시 포함될 것이라고. 쿤의 책이 나이를 더 먹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본격적으로 우주 시대가 되면 그 이론의 진가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자들도 흔히 간과하고 있지만, 아직은 과학도 '지구 기준적 사고체계' 다. 관찰자로서 과학자는 지구에 상주(常住)하기 때문이다. '탈(脫)지구' 의 시대가 오면, 즉 지구 밖 상주라는 관찰자의 위치이동과 관찰의 조건이 획기적으로 바뀌면 우주적 패러다임에 따른 새로운 과학 혁명은 불가피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자연과학자(까치글방)와 사회학자(이화여대출판부)의 번역본이 있다. 하지만 쿤처럼 깊이있는 과학지식과 폭넓은 인문학적 식견을 갖춘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자의 치밀하고 성실한 번역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김용석 <철학자.전 로마 그레고리안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