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장애인도 갑근세 내봤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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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친구가 나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월급쟁이가 되어서 갑근세를 한번 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그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긋지긋한 월급쟁이가 무슨 소원이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일급 장애인인 나는 근로제공으로 얻은 소득에 부과하는 갑근세를 한 번도 내본 적이 없다. 알량한 원고료나 강사료는 늘 과세점 이하다. 말하자면 나는 태어나서 40세가 된 지금까지 실업상태인 것이다.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기업의 구조조정 문제가 심각히 대두되고 있다. 실업자가 다시 1백만명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나왔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서 구조조정이 있게 되면 으레 장애인 근로자가 1순위로 대상자가 된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정작 큰 문제는 그러한 실업이 아니라 고용 자체다. 장애인들은 취업률이 고작 30%인 절대 실업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애인 실업자가 끝없이 생겨나고 있음에도 장애인 실업대책은 취업대책이어야 한다고 단언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구조조정이나 경기가 나빠지면 덩달아 취업의 문이 극도로 좁아진다는 데 있다. 기업은 이럴 때 가급적이면 다양한 능력의 소유자를 쓰려 한다. 다시 말해 경쟁력을 충분히 갖춰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할 수 있는 사람만을 원하는 것이다. 몸값을 올리고 자기개발을 하라는 이야기는 결국 고용의 기회가 그만큼 적어지니 그것에 대비하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장애인이 취업을 할 것인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3백인 이상 고용한 사업장 50개를 다녀보았는데 올해 고용하겠다는 장애인의 수는 모두 합쳐 10여명이라고 한다. 장애인은 주어진 한 사람분의 몫도 다하기 어려운데 기업은 팔방미인을 원하고 있으니 고용 장려금 몇 푼 준다고 장애인 취업문제가 해결될 턱이 없다. 게다가 경총은 무시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 내는 부담금이 기업의 준조세 성격을 갖고 있는 규제라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법 제정 때 대상 사업장 선정에 심각한 실수가 있었던 것이다.

대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3백인 이상 사업장에서 2% 이상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게 돼 있는 현재의 법률을 더 작은 작업장에까지 확대시키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작업장의 기준을 50인 정도로 낮추면서 고용률도 1%로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기업에서 장애인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줄 수가 있다. 물론 기업의 부담금도 줄어든다. 정책은 어떻게든 고용시장을 확대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기금이 고갈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이 내는 부담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절대 실업상태인 장애인들의 취업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이 바닥나듯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기금이 고갈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미봉책으로 일관하다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발전하면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큰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지 않게 장애인 실업, 더 나아가 고용에 대한 조속한 대책의 강구가 절실한데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조차 2% 고용을 지키고 있지 않으니 할 말이 없다.

이제는 정부나 기업 모두 단순한 보상의 차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장애인을 제대로 고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의 부담이 아니라 개발되지 않은 또 다른 인적자원이고 가능성.대안이라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인을 고용하면 정부에서 주는 혜택이 뭐 없느냐는 안일한 생각이 기업주들에게 남아 있는 한 장애인의 고용과 직업재활은 없는 것이고, 갑근세를 내고 싶다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장애인들의 소원도 영원히 이룰 길 없을 것이다.

고정욱 <소설가.성균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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