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葉落歸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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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유방(劉邦)과 함께 대륙 중원의 패권을 다퉜던 항우(項羽)는 관중(關中·현재의 西安)땅을 장악한다. 이때 한 장수가 ‘관중은 천하의 요새이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자’고 제의했다. 이 말에 항우는 피식 웃고는 답한다. ‘부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밤에 화려한 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누가 알아주겠는가(富貴不歸故鄕, 如衣綉夜行, 誰知之者)’라고 답했다. 항우는 진(秦) 궁궐을 철저히 파괴한 뒤 수레에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고향으로 떠났다.

성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금의행주(錦衣行晝)’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됐다. 화려한 비단 옷(錦衣)을 입고 밤이 아닌 낮에 고향으로 간다는 뜻에서다. 당(唐)나라 고종 이연(李淵)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옛사람들이 동경하던 일(錦衣還鄕, 古人所尙)’이라 했다. 이후 ‘금의환향’이라는 말이 폭넓게 쓰이고 있다(중국에서는 ‘衣錦還鄕’이라고 한다). ‘금의영귀(錦衣榮歸)’ 역시 같은 뜻이다.

타지에서 생활하다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의 또 다른 말은 ‘엽락귀근(葉落歸根)’이다. ‘나뭇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성어는 순자(荀子) ‘치인편(致仁篇)’에 나오는 ‘물은 깊어 되돌아오고, 나무는 떨어져 퇴비가 되네(水深而回,木落糞本)’라는 구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후대 학자들이 이를 ‘물은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水落歸末,葉落歸根)’로 해석하면서 ‘葉落歸根’이라는 성어가 생겼다. 불가(佛家)에서 많이 인용된다.

새가 저물면 제 집을 찾듯(歸巢)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성일 터다. 여우조차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首邱初心)고 했으니 말이다.

30년 전 한국을 떠나 온두라스로 이주했던 강영신(57)씨가 온두라스 대사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금의환향’이요, ‘엽락귀근’이라 할 만하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엽락귀근은 바쁜 일상에 찌든 모든 현대인들의 소망인 것을….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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