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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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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봄이 오는가 싶더니 허울뿐인 동장군(冬將軍)이 아직은 위세를 부리고 싶은 모양이다. 어제 오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더니 눈발마저 심상찮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 벌레가 깨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경칩(驚蟄)이 지나고 매화도 봄소식을 전한 뒤건만 대설경보라니…. 봄꽃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꽃샘추위가 매섭다.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조금도 반가울 리 없지만 이 추위마저 겪어내야 진정 봄이 오는 게 자연의 섭리일 터다.

꽃샘추위는 겨울 동안 맹위를 떨치다 물러난 찬 대륙고기압이 초봄에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쳐 갑작스레 찾아오는 추위다. 물론 공식 기상(氣象)용어는 아니다. 예부터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이 피지 못하도록 차가운 바람을 불게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가 전한다. ‘꽃이 피는 걸 시샘하는 추위’라니 꽤나 운치가 있다. 이 무렵의 추위를 일컫는 중국의 봄추위(春寒), 일본의 꽃추위(하나비에·花冷え)란 말보다 고상하기가 한 수 위다.

꽃샘추위는 잎이 나오는 것을 시샘하는 추위라는 뜻에서 ‘잎샘추위’라고도 한다. ‘꽃샘잎샘 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나 ‘꽃샘잎샘 추위에 두루 안녕하시냐’는 인사말이 나온 까닭이다. 쌀쌀한 바람을 의미하는 ‘꽃샘바람’ 또한 꽃샘추위의 다른 이름이다.

흔히 시련 극복을 꽃샘추위에 빗대기도 한다. “나는 힘주어 말하고 싶다. 이 추위와 혼란은 잠시 나타난 꽃샘추위일 뿐이라는 것을. 아무리 칼바람처럼 매섭다 할지라도 소리 없이 장엄하게 다가오는 봄을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을”(한완상, 『우아한 패배』). 1970년대 어두웠던 시절을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시인 이종욱의 ‘꽃샘추위’란 시(詩)도 비관이 아니라 희망을 노래한다. ‘(前略)/바람이 셀수록 허리는 곧아진다/뿌리는 언 땅속에서 남몰래 자란다/햇볕과 함께 그림자를 겨울과 함께 봄을/하늘은 주셨으니’

이달 중순 꽃샘추위가 한 차례 더 찾아올 거라고 한다. 그러나 꽃샘추위가 도도한 봄기운을 가로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꽃샘추위는 봄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자연(自然)이 마련한 통과의례일 뿐이다. 그런 추위를 이겨냈기에 봄꽃이 더 아름다운 게 아니던가. 사람 사는 이치도 다르지 않을 듯싶다. 어렵고 힘겨운 때가 지나면 봄날은 오게 마련이다. 가슴을 한껏 펴고 봄을 맞을 일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