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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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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이 참말처럼 느껴지는 가을날이 이어지고 있다. 단풍은 별보다 더 반짝이고 햇살은 비단결처럼 살갗을 간질인다. 저승살이가 어떤지 얘기해 준 이가 없으니 우리 마음이 지금 움켜쥘 건 이 작은 기쁨뿐이다. '배꼽에 두 손 모으고 관에 들어갈 때까지 남 잘못 꾸짖지를 마라, 제 허물이 더 크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새삼스럽다. 하늘이 준 만큼 목숨을 건사하는 일은 그렇게 힘들고 덧없다.

죽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모든 생명체 가운데 인간만큼 죽음 이후에 집착하는 동물이 없다고 말한다. 시신을 땅에 묻거나 태우는 등 장례 절차가 인종이나 국가마다 만만치 않은 의식과 역사로 전해져 온다. 부모에게서 받은 터럭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는 한국은 특히 매장을 고집하는 전통이 강하다. 조상 묘를 잘 써야 후손이 잘 산다는 생각도 한국인이 매장에 매달리게 하는 큰 요인이다. 산 사람이 살 땅도 좁은데 죽은 이 묻을 묘지를 마련해야 하는 일이 나라 전체의 고민거리가 됐으니 장례 문화를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시체를 땅에 묻으면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된 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아는 가장 일반적인 죽음이다. 불에 태워 남은 뼈를 곱게 갈아 납골당에 안치하는 화장법도 많이 받아들이는 추세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의료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요즈음은 시체로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몸바칠 수 있는 길이 여러 가지 열려 있다. 다른 목숨붙이를 위해 장기이식을 할 수도 있고 의과대학에 연구용으로 기증할 수도 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을 말을 빌리면 '사체가 된 다음 해볼 만한 일이 많다'.

'사랑의장기기증본부' 오재철 이사 집안이 3대에 걸쳐 장기를 기증하고 시신을 기부해 수십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준 이야기는 나눔의 실천이자 죽음의 완성이다.'어차피 썩을 몸 이 땅에 모두 주고 떠나고 싶다'는 오씨 어머니의 한마디가 우리 가슴을 울린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참살이(웰빙) 바람이 거세다. 어떻게 사느냐는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은 게 어떻게 잘 죽을 것(웰 다잉)인가라고 생각하는 이가 늘고 있다. 오씨 집안은 죽음을 생명으로 부활시키는 웰 다잉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송장이 돼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아름다운 마침표다.

정재숙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