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보보' 와 구제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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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의 지식.정보화시대를 이끌어가는 신흥 엘리트계층에 '보보(bobo)' 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첫 음절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다.

1960년대 히피세대의 반문화적 성향과 80년대 여피세대의 성취지향적 태도가 놀랍도록 잘 결합된 이 보보세력이 오늘의 미국 사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낙원 속의 보보스』라는 책에서 브룩스는 보보들이 보이는 소비행태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전에는 값이 쌌던 상품에 큰 돈을 들이는 점이라고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먹거리다. 감자 한개를 사더라도 아이다호의 대규모 농장에서 기계영농으로 재배된 감자 대신 프랑스 북부 특정지역에서 재배된 감자를 몇곱절의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이다. 마시는 물도 한병에 5달러를 주더라도 특정한 생수만을 고집한다.

급속한 산업화와 무분별한 개발, 물량 위주의 생산방식으로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식탁에 오르는 농산물과 식품의 안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농약.다이옥신.중금속.환경호르몬.유전자 변형 농산물(GMO)등 먹거리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와 함께 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유기재배 농산물을 찾는 경향을 보보들의 특권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5백년 전 이탈리아에서 처음 발견된 1급 동물 역병인 구제역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30여개국에서 소와 돼지 등 발굽이 두개 달린 동물들이 구제역을 앓고 있고,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구제역에서 안전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광우병 파동이 한창인 상태에서 구제역까지 겹쳤으니 쇠고기와 돼지고기 소비가 급격히 줄고, 채식주의가 새롭게 각광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 게 광우병의 원인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중세의 역병이 21세기 지구촌을 혼란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세계화에 따른 사람과 가축의 이동 증가와 기계식 축산의 부작용이라는 진단도 있다.

사육과 도축이라는 잔인한 과정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는 인류의 오랜 육식문화에 대한 생태계의 반란이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보보들처럼 호들갑을 떨 것까지야 없겠지만 식생활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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