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13억의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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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계화' 라는 당대의 화두 속에 미국의 패권전략이 숨어 있지 않느냐는 지적은 『세계화의 덫』 등 서구의 저작을 통해 익히 접해 온 바다.

하지만 우리네 상황과 지식사회 풍토에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 라고 외치는 일이 가당한가.

반면 『13억의 충돌』은 중국에서 신좌파로 분류되는 저자가 미국 주도의 세계화를 뒤짚어 보자며 중국의 지식사회를 대상으로 설득에 나선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패권전략에 맞서 독자적인 중국의 생존공간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내놓는다.

흐름으로 보자면 1990년대 후반 일기 시작한 『중국인은 왜 'No' 라고 말해야 하나』『중국인은 'No' 라고 말할 수 있다』 등 이른바 'No 시리즈' 이후 중국 민족주의 열풍에 맥을 대고 있다.

이 책은 중국이 가입을 앞두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중국의 정부와 경제계 등이 WTO 가입을 중국의 당면 과제로 보고 있지만 저자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중국이 세계화의 판도에 뛰어들 경우 공룡 다국적 기업의 활발한 대륙 진출로 중국 국영기업체들은 고사(枯死)하고 만다는 것.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무역과 투자의 완전 자유화를 추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자국 기업들을 위한 보호주의를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고, 따라서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만능주의와 경쟁만능주의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중국이 당장 세계화에 뛰어드는 것은 '전투기 공중전' 이다.

후발 전투기가 먼저 비행을 시작한 전투기에게 당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물음이다.

하지만 '미국에 맞서는 중국' 이라는 이미지, 외교전략에서 주변국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도 언뜻 내비치는 중국 중심의 사고는 중국 사회전반에 걸쳐 남아 있는 전통적인 '중화(中華)주의' 를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한계이기도 하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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