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계경제 난기류 대응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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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계경제에 대해 요즘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년 동안 장기호황을 보이던 미국 경제가 불황으로 치달을 위험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일본 경제도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 전반이 중국을 빼놓고는 아직도 금융위기로부터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구조개혁의 지지부진함으로 제2의 금융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亞 제2금융위기론 대두

특히 미국의 '신경제' 를 대변하다시피하던 나스닥 지수가 지난 12일 2, 000선 이하로 떨어졌는데 이는 1998년 12월 이래 2년3개월 만의 일이다. 다우존스 지수도 10, 200을 기록, 지난해 10월 19일 이래 최저수준이다.

올해 초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국 경제의 호황국면이 이제 끝나지 않았는가 하고 우려했던 것이 신경제를 대표하는 기술주 '간판스타' 들의 가격이 폭락함으로써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미국 경제 내면에 거품기가 많다는 지적은 몇년 전부터 있었다.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교수와 모건스탠리-딘위터사의 스티븐 로치라는 경제분석가가 대표적인 거품론자다. 그들에 의하면 정보.통신.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이 미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해 왔던 것은 사실이나 실제보다 너무 과대포장돼 있다는 것이다.

그 과장된 기대가 주가를 계속 올려놓았고 이로부터 일반 주식투자자들이 기대 이상의 자본이득을 얻게 됐다. 이러한 '장부상' 의 이익이 소비를 부추겨 적정수준 이상의 성장을 해 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술한 첨단산업의 확산속도가 주춤거리기 시작한 지난해 3월부터 증시는 냉각현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에 과잉반응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소비지출을 급격히 줄이고 기업도 투자를 축소조정함으로써 경제는 빠른 속도로 불황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과연 이러한 침체국면을 벗어날 수 있을까?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그린스펀의 계속된 금리인하조치와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이 효과를 나타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1월 3일 금리 인하조치가 별무효과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감세정책도 지금 당장 실시되는 것이 아니므로 시장불확실성만 높일 뿐 실물부문의 회복으로 연결되기는 당분간 어렵다는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10년이 넘도록 장기침체에 빠져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정치불안마저 겹쳐 정부.기업 모두가 간신히 현상유지만이라도 하자는 소극적 대처방안에 안주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IT대의 폴 새뮤얼슨 교수나 메릴린치사의 브루스 스타인버그 같은 경제전문가는 미국 경제상황을 일본과 같은 '구제불능' 식으로는 보지 않는다. 주식시장에서 일시적 불안현상은 때때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니 '신경제' 를 통해 꾸준히 구조개혁을 해나가는 미국경제는 거품이 제거되는 대로 곧 안정될 확률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불안요인이 많은 세계경제 상황하에서 대외 의존도가 큰 우리경제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급변하는 상황에 따라 단기적으로 민첩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적응해 가면서 장기적으로는 경제체질을 강화시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해나갈 수밖에 없다.

***경제 체질강화에 초점을

우선 위축될 가능성이 높은 수출부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미.일로부터의 주문이 감소할 것은 뻔하다. 또한 일본 엔화의 평가절하 추세로 인해 우리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환율정책과 더불어 수출선의 다변화 노력이 중요하다. 유럽.남미.중국시장은 비교적 자체수요를 정상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산업구조의 고도화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며 자본.기술집약적 산업기반을 구축하려고 주변국들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도 국내의 활력 저하로 인해 어떤 탈출구를 모색하려 하고 있다. 한국과 같은 역동성이 살아 있는 국가로 투자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만일 우리 경제가 노동부문을 포함한 구조조정에 성공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속히 갖춘다면 장기적으로 동북아지역에서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

증시등락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좋지 않다. 더욱이 단기적 부양책을 쓰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번 기회에 우리 증시도 거품을 더 빼고 실적주가 주도하는 견실한 시장구조를 구축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유장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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