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무료 민원 구제 행정불신 제거 큰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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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3년을 근무하다보니 주변사람들로부터 간혹 법적 강제력은 없고 권고적 효력만 있는 결정을 내리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옥상옥(屋上屋)이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산만 축내는 불필요한 기관이 아니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다.

관존민비의 관념이 아직도 지배적인 탓인지 무보수.명예직의 비상임 위원장 신분에 대해 비하하는 인식도 있는 듯 해 황당한 느낌이 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비록 민간인 신분이더라도 2백명 가까운 공무원들과 함께 한 나라의 옴부즈맨이자 합의제 행정관청의 장으로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보람찬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덴마크.뉴질랜드 등 선진제국은 국민의 권리보호를 더욱 강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옴부즈맨을 도입했다. 1990년 이후 동유럽국가들도 행정민주화의 일환으로 옴부즈맨을 적극 설치했다. 이처럼 옴부즈맨의 도입이 세계적인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권고적 구제제도인 옴부즈맨을 낭비라고 지적하는 시각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엄격한 증거재판주의와 문서주의에 입각해 분쟁을 처리하는 법원의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일방의 승리와 타방의 패배라는 가혹한 결과를 낳아 후유증이 적지 않다.

반면 연간 1만5천여건의 고충민원을 접수.조사하고, 시정권고한 민원 중 90% 정도가 수용되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경우 무료로 신속히 민원을 구제하고 있다. 특히 당사자간의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상생의 원리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의약분업 및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집단행동으로 국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불법적 집단행동으로 인한 사회혼란의 원인은 국민들이 정부정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행정불신이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행정기관은 거대한 상대일 수밖에 없다. 막대한 재정과 정보 및 인력을 바탕으로 집행되는 행정에 대해 개인이 대등하게 상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개인은 상대적으로 무력감을 느끼고 그 결과 행정에 무조건 저항하는 심리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행정에 대한 신뢰회복은 약자인 국민에게 힘을 보태 행정기관과 대등한 당사자의 위치에 서게 만들어 주는 길밖에 없다.

소송을 수행하면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듯 국민은 행정기관과의 다툼에서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조력을 받아 행정의 처리과정을 소상히 알게 되고 전문적인 조사를 통한 구제도 받게 된다. 옴부즈맨으로서의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약자인 국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지팡이다.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국민이 위법.부당한 행정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노력할 때 행정불신은 조금씩 해소될 것이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 점진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행정기관이 행정처분을 일방적으로 내리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명확한 잣대 없이 내리는 행정처분에 저항하는 국민도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바뀐 행정환경에서 국민과 행정기관 사이의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조정자로서 활약하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행정고충을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할 때 집단화한 히스테리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우리도 선진국과 같은 사회적 안정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주광일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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