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60년 마산 항쟁 보도한 전응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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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3월 15일 오후 7시. 마산의 학도들과 시민들은 정.부통령 선거 개표장인 마산시청으로 물밀듯이 밀려갔습니다. '우리 함께 뭉쳐서 민주정치 도로 찾자' . 마산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을 선두로 대대적인 데모를 벌이고 있습니다. (데모 중)그러나 경찰은 평화적인 데모대에 총탄을 퍼부어 젊은 학도들과 시민은 수없이 쓰러져 갔습니다. "

이승만 전 대통령 하야의 도화선이 된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의거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유일하게 보도했던 당시 부산 문화방송 보도과장 전응덕(全應德.70.한국광고단체연합회장)씨.

그가 15일 마산의거 41주년을 맞아 3.15의거기념사업회로부터 공로상을 받는다. 全씨는 3.15 마산의거 당시 암펙스 녹음기를 들고 현장을 누비며 취재했다. 당시 그의 목소리는 한시간짜리 녹음테이프에 담겨 있다.

"4월 13일. 아직도 분노가 가시지 않은 마산 시민은 아침부터 경찰의 제지를 무릅쓰고 김주열군의 시체가 안치된 마산도립병원으로 물밀듯이 밀려갔습니다. 몽둥이를 휘두르며 총기로 위협하는 경찰과 맞선 시민들은 김주열군의 시체를 경찰에 빼앗겨서는 안된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데모중인 시민들) '분해서 어찌 살겠노' ."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서 녹음기를 들고 취재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죠. 방송국을 폐쇄하겠다는 위협도 받았습니다. "

그는 "언론이 민심의 한가운데 섰을 때는 정면으로 돌파를 할 수 밖에 없다. 시민들의 지지와 호응이 목숨을 건 보도를 가능케 했다" 고 말했다. 全씨는 이후 서울 문화방송 보도부장.동양방송 보도국장 등을 거치면서 신금단 부녀 상봉 등의 특종을 했다.

"41년 전 부패한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돈세탁방지법안에 갈팡질팡하는 걸 보면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문입니다. "

그는 요즘의 언론에 대해 "약한 집단에는 정도를 지키지만 강한 집단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며 "양비론도 극복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글.사진〓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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