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미래도시, 행복한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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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과거의 중국을 보고 싶으면 西安으로 가고 현재의 중국을 보고 싶으면 北京 떠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미래의 중국은上海에 가보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도시, 행복한 생활( better city, better life)"을 테마로 한 상하이 엑스포의 개막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하이 엑스포는 黃浦江 중류에 東西에 걸쳐 여의도 2배에 가까운 대형 박람회장을 확보하여 역대 최대 규모의 박람회를 예고하고 있다. 모두 191개국과 48개의 국제기구가 참가 예정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국가관, 기업관, 서울시관등으로 박람회 규모에 맞추듯이 역대 최대 규모다. 중국은 상하이 엑스포를 통하여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중국의 미래로서 다시 한번 자리 매김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이면 90주년이 되는 중국공산당의 산실이었던 上海는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세계 제2위에 육박하는 경제대국의 면모와 함께 올드 상하이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江의 동쪽 浦东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있는 스카이라인으로 성장한는 중국의 맥박을 느낄 수있지만, 눈을 돌리면 1920-30년대의 上海가 눈앞에 펼쳐진다.
1920-30년도 상하이는 중국의 미래였다. 지금은 엑스포라는 조직을 통하여 각국이 국가관이며 기업관을 짓고 있지만 1920-30년도에는 세계의 자본들이 밀려 들어와 상하이에 아트 데코의 아름다운 미래 도시를 건설하였다. 당시 세계에서 상하이에 견줄 수있는 유일한 도시는 미국의 뉴욕정도였다고 한다.
뉴욕의 맨하턴은 땅이 한정되어 과거 아름다웠던 건물의 대부분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헐리고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上海에는 아트 데코 등 당시 유행했던 건축양식이 거의 손상 되지 않고 마치 냉동된 상태처럼 옛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하이의 아트 데코의 건물군은 상하이 이외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상하이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과거 조계지역이나 外滩(분트)과 난징(南京)로 그리고 가든 브리지(外白渡橋)에서 1930년대 로맨틱했던 올드 상하이의옛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분트(인도어로 제방)의 옛 세관건물에는 지금도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탑이 있다. 이는 런던의 시계탑 빅 벤을 흉내낸 것으로 1930년대 중국의 세수입의 48%가 이 세관에서 거두어 들였다고 한다. 1950년대 개업한 和平飯店은 1930년대의 캐세이(Cathay) 호텔과 팔래스(Palace) 호텔을 개조한 것이다. 캐세이 호텔은 당시 상하이의 명문 사쓴(Sassoon)家의 상징건물로 오너의 이름을 따서 사쓴 하우스 (Sassoon House)라고도 불린다.12층 건물의 최상단이 피라밋형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쓴家는 중동의 유태인계로 본래 이라크의 바그다드 출신이었다. 그 후 인도의 뭄바이를 거쳐 上海로 와서 대기업을 이루었다. 사쓴家는 1949년 신중국 건국되자 바하마제도로 철수하였다고 한다.
지금 홍콩의 페닌술라호텔 계열을 가지고 있는 홍콩 4대 부호인 카도리(Kadoorie)家는사쓴家와 마찬가지로 바그다드 유태인계로 한 때 사쓴가의 집사출신에서 성공한 기업인이었다고 한다.
사쓴 하우스에서 길 건너를 보면중국은행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한 때 중국지폐의 사진에 들어 간 적이 있는 유명한 건물이다. 상하이에 외국계 건물이 들어서자 중국계 은행에서 출자하여 건립한 것으로 당초에는 이웃의 사쓴 하우스를 능가하는 높은 건물을 지을려고 하였으나 사쓴家의 반대로 뜻을 못 이루고 현재 높이로 되었다고 한다. 아트 데코의 서양식 빌딩이나 지붕만은 기와모양으로 중국 취향으로 처리하였다.
인민광장 인근에 내부 수리를 끝내고 영업을 재개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파크호텔이 있다. 이곳은 1930년대 상하이의 유일한 경마장 트랙이 내려다 보이는 이유로 파크호텔로 명명되었으나 중국에서는 國際飯店으로 불리고 있다. 1934년에 완공된 높이 22층의 건물로 최근까지 상하이의 최고의 마천루였다. 완공 당시에는 뉴욕 밖에서는 이보다 높은 건물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항가리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더욱 유명하였다.
아편전쟁 후 중국에서 가장 크게 발전한 상하이는 영국이 중심이 된 국제조계, 프랑스의 단독조계 그리고 중국계등 이른바 멜팅 포트의 도시로 서로 경쟁하듯이 중국의 미래를 보여주는 건물을 지었다. 당시 상하이는 오늘날의 홍콩처럼 동서양이 만나는 접점으로 잠들지 않은 동아시아의 국제도시로 유명하였다.
금년 5.1부터 10월말 까지 6개월간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엑스포는 옛 상하이의 영광과 함께 상하이를 통해 21세기 중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창이 될 것 같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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