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堂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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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과거에 번듯한 주택을 지을 때는 방 앞에 당(堂)을 만든다. 우리 한옥 형식으로 말하자면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대청(大廳) 또는 대청마루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일반적인 가례(家禮) 의식(儀式)이 대개 당이나 대청에서 열린다.

당은 관아(官衙)의 집무실을 부르는 데서도 쓰였다. 그래서 명(明)대에는 현재의 장관급이나 차관급 벼슬자리의 관리를 당관(堂官)이라고 불렀다. 조선에서도 그 급의 관리를 당상관(堂上官), 그 아래의 관리를 당하관(堂下官)으로 나눠 불렀다. 성명을 직접 부르지 않고 그 사람이 사는 거처의 집 이름으로 호칭을 대신하는 게 당호(堂號)다.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여유당(與猶堂), 율곡 이이의 어머니 사임당(師任堂) 등이 대표적이다.

당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이 실(室)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방(房)인 셈이다. 내실(內室) 또는 침실(寢室) 등 매우 개인적인 공간에 ‘실’이라는 글자가 붙는 이유다. 어쨌든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와 방까지 진입하는 과정의 선후(先後) 관계는 ‘당→실’이 되는 셈이다.

‘늑대’를 잘못 끌어들여 내실까지 오게 한다면 파장(罷場)이다. 그 뜻의 성어가 ‘인랑입실(引狼入室)’이다.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의 내면에 담긴 내용이 소중하지, 겉만 번지르르한 치장은 중요치 않다는 점을 일깨운 당(唐)대 문인 유우석(劉禹錫)의 유명한 문장 제목은 ‘누실명(陋室銘)’이다.

그런 점에서 당보다는 실이 더 수준이 높은 셈이다. 건축에서 최상위의 개념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승당입실(升堂入室)’이다.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의 음악을 평하면서 “대청마루에는 이미 올라섰고, (단지) 방에는 들어서지 못했을 뿐(由也升堂矣, 未入于室也)”이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 어느 정도 수준에 들어선 사람, 그가 앞으로 더 올라야 할 경지를 당실(堂室)에 비유했다.

요즘 일본이 한국을 부러워한단다. 밴쿠버 금 소식, 휘청거리는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약하는 한국 산업 때문이다. 그러나 자만은 결코 금물(禁物)이다. 공자의 지적처럼 우리의 진정한 국력은 실 앞의 당, 아니면 그에도 못 미치는 마루 밑 섬돌에 머무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살필 일이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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