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서울] 높고 운치없는 주택가 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고급 주택가. 집마다 크고 작은 정원을 갖고 있지만 한결같이 높은 담장에 가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서울 시내에서 비교적 정비가 잘 돼 있다는 주택가이나 거리를 걷는 이들이 보게 되는 것은 높은 벽돌 담장과 아스팔트 도로 뿐이다. 집안은 잘 가꾸면서도 외관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 거리 전체가 딱딱하고 운치가 없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아파트 단지도 회색빛 벽돌 담장에 둘러 싸여 있다. 마치 공장을 지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서울 시내 아파트의 경우 담장이 범죄 예방 기능을 할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지만 높이를 낮추거나 녹지를 조성하는 등 거리 풍경을 고려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회색빛 건물과 높고 침침한 담장이 서울 거리 곳곳을 점령해 도시를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자투리 땅까지 촘촘하게 개발이 진행된 서울의 시민들은 작은 화분 하나 집앞에 내놓는 여유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에서 만난 미국인 매튜 킨들러(30)는 "급성장한 서울은 고층 빌딩과 상가가 많아 대도시라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답답하다" 며 "도시의 인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녹지를 가꾸고 건물 외관에도 신경쓰면 좋겠다" 고 말했다.

◇ 대책〓건물 외벽과 담장을 푸르게 가꾸기 위해 서울시는 창문에 화단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나 벽돌 담장 대신 생울타리를 조성토록 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건물 창문 등 물 주기가 어려운 곳을 위해 자동 급수 시스템도 마련했다. 시는 창문 화단을 보급하고자 다음달부터 시청 본관과 개포동 공무원임대아파트 등에 시범 화단을 가꾸기로 했다.

시는 또 최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 우리 환경에 맞는 생울타리 조성 기법을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이미 일산 등 신도시 설계에서는 인접 대지와 경계를 이룬 곳의 담장을 생울타리로 만들거나 70㎝ 이하로 낮게 설치토록 하는 등의 정책이 적용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창문 녹화나 담장 바꾸기 등은 주민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추진하기 어렵다" 며 "동참하려는 주민들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 중" 이라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