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고속도로·터널 등 정부서 적자 메우기 바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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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95년 건설교통부는 서울~영종도 간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의 하루 평균 교통량을 13만3000대로 추정하고 민간 건설업체들에 도로건설 공사를 맡겼다. 완공 후 20년 동안 통행료를 받아 사업비를 회수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교통량이 추정치를 밑돌아 손실이 나면 정부가 보조해 주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지난 4월 교통량을 측정해 보니 하루 평균 5만5000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건교부가 지난해 시행업체들에 무려 1050억원을 보존해 줘야 했다.

서울 강남구 우면산 터널 등 2004년 1월 현재 완공된 4개 민자유치 도로 및 터널 사정도 마찬가지다. 공사계약을 할 당시 예상 교통량의 22~63%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정부는 이들 시설물 운영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해 참여 기업들에 모두 1612억원을 손실 보전금으로 지급했다.

감사원은 25일 이런 내용의 '민간기업의 사회간접자본(SOC)시설 분야 참여실태 특감'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SOC 분야의 민자유치 사업을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바람에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교통량은 장기적으로 따져봐야 하며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 민자유치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교통수요 예측 왜 빗나가나=감사원은 2004년 1월 현재 건설 중인 17개 민자유치 SOC 시설의 실제 교통량이 건설공사 발주 당시 예측량의 50% 수준에 그친다는 전제로 정부가 2001년부터 2038년까지 12조5790억원을 영업손실 보전에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처럼 실제 교통량이 예상치를 크게 빗나가는 것은 사업에 참여하는 민간기업들이 사업 위험을 낮추기 위해 계약할 때 교통량을 부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정부 부처들도 이를 웬만큼 파악하고 있지만 예산은 부족하고 지어야 할 SOC 시설이 많다 보니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느 정도 눈감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기업들의 이런 교통량 부풀리기를 제재할 근거도 없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교통량 수요예측을 엉터리로 하는 기업을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고, 영업손실 보전제도를 아예 없애거나 보전금을 대폭 줄이는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건교부와 기획예산처에 통보했다.

하지만 현실을 무시한 책상행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건교부 관계자는 "감사원의 지적이 옳지만 그런 유인책을 없앨 경우 민간분야의 SOC 투자가 위축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중구난방식 사업 추진=감사원은 건교부가 지역 전체의 교통량을 고려하지 않고 부처 내 부서이기주의에 따라 중복투자를 추진, 국고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교부는 서울~춘천 지역의 교통난 해소를 위해 서울~춘천 민자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46번 국도의 대체도로 및 하남~화도 국도 건설을 각각 서로 다른 부서에서 추진 중이다. 감사원 분석 결과 민자고속도로와 46번 대체도로만 건설해도 2030년까지 교통량 증가를 소화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일부 지자체는 민자유치의 타당성도 검토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민간기업에 SOC 공사를 발주하고 있다.

남양주시가 민간기업들에 맡긴 하수종말처리시설 공사는 민자를 끌어들이지 않고 시가 자체적으로 추진할 경우 91억원을 절감할 수 있지만 시는 민자유치를 강행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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