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환갑의 미국 대학 총장님 새내기로 좌충우돌 반 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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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임 어 스튜던트
로저 마틴 지음, 노진선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09쪽, 1만2000원

그가 대학에 입학했다. 사람들은 축하하기는커녕 이렇게 묻기 일쑤였다. “솔직히 말해보세요. 이러는 이유가 진짜 뭐예요?” 그럴 만도 했다. 나이는 예순 한 살. 게다가 큰 수술도 받았다. 공부 못한 아쉬움을 평생 끌어안고 산 것도 아니다. 그의 직업은 대학 총장. 더 정확히 말해 30년 넘게 대학 교수와 총장으로만 지내온 그가 대학생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로저 마틴, 미국 버지니아주 랜돌프메이컨대 전 총장(현재는 명예교수)이 책의 지은이다. 57세 생일을 앞두고 폐암으로 1년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던 그는 수술로 건강을 되찾은 뒤 삶에 재도전하기로 결심한다. 꿈은 대학 1학년생으로 돌아가보는 것. 이 책은 그가 안식년을 이용해 미 세인트존스대에서 보낸 반년 간의 신입생 생활 경험을 담은 유쾌한 에세이다.

권위를 내세우던 총장님의 신입생 생활은 한마디로 ‘고난’ 수준이다. 입학 때 신입생 물품을 받기 위해 줄섰다가 “학부모님은 저쪽으로 서세요”라는 비난에 소심하게 줄에서 나왔는가 하면, 정작 입학식에선 학부모 석으로 발길을 돌렸다가 부인으로부터 “재학생 석에라도 앉으라”는 핀잔을 받는다. 열여덟 살 동급생들에게 말을 붙여보지만 학생들은 그를 ‘유령’취급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가 ‘조정에 대한 로망’을 이뤄보겠다며 시작한 조정부 동아리 활동, 그를 피하던 학생들과 하나, 둘 학생들과 마음을 터놓고 나눈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책은 미국 총장님의 별난 도전, 그 이상이다.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가볍게 노를 잡고 노 젓는 걸 즐기세요.” 조정을 가르쳐주며 딸이 해준 이 말을 그는 가슴에 새겼다고 했다. 총장으로 일하며 매사를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지만, 좀 더 힘을 빼고, 여유를 갖는 게 인생을 즐기는 것임을 깨달았단다. 아무래도 그는 글도 그렇게 쓰기로 작정한 듯하다. 힘주지 않고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며 하고픈 얘기를 다한다. 신입생에게 그리스어 사전을 선물하고, 특정한 전공 없이 전교생이 『일리아드』 『오디세이』 『국가론』 등 고전을 읽는 세인트존스대의 커리큘럼과 토론식 수업, 그곳에서 만난 어린 동급생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그 자체로 메시지가 크다.

시종일관 우스갯소리로 학창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책의 끄트머리에서 왜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했는지, 자신은 왜 『파이돈』을 심금을 울리는 작품으로 꼽는지 말하는 대목에선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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