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위헌' 결정 끌어낸 이석연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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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수도 이전 사업이 완전히 중단됐다. 이번 결정은 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각종 국가적 혼란을 최고 헌법기관이 정리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본지는 이번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 온 이석연(50) 변호사를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변호사는 이번 결정의 의미, 결정 선고가 나기까지의 비화, 현재의 심경 등을 솔직하게 밝혔다.

# "헌재 결정, 국민 모두의 승리"

이 변호사는 이번 헌법소원 사건을 맡으면서 일체의 수임료를 받지 않은 채 무료로 법률 대리인 활동을 했다. 지난 8월엔 자신의 돈으로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의회도서관 등에서 수도 이전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그동안 헌법소원을 준비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 것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헌재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데 대한 감회는.

"함께 대리인단으로 참여한 법조 선배인 이영모.김문희 전 헌재 재판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모든 공은 두 분께 돌린다. 이번 결정은 야당뿐 아니라 집권세력의 짐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권의 한 정치인이 전화해 '수고하셨다. 여야 모두를 구제해 준 현명한 결정인 것 같다'고 말하더라. 장기적으로 국민 모두가 승리자라고 본다. 수도 이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리라고 본 사람은 거의 없다. 갈등과 소모전으로 점철될 우려가 더 많았다. 우리 모두 헌재가 명쾌하게 판단해 준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 등이 헌재 결정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번 결정은 세계 헌법학적으로 관습헌법의 보완적 기능을 판례법으로 확정한 첫 사례다. 따라서 기념비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률학자들 간에 학설이나 견해가 엇갈려도 헌재가 결정하면 판례법으로 확정되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 선고로 관습헌법 개념은 이미 판례로 형성이 됐고 강제적 구속력을 갖게 됐다. 깨끗이 승복하고 따라야 한다. 판례 분석 차원에서 이번 결정의 타당성을 연구하고 관습헌법에 대해 논의해 나갈 수 있지만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쿠데타적 발상이다. 헌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때도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의한 대통령의 행위 등이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부의권을 부여한 헌법 제72조에 위반된다고 두 번이나 지적하면서도 탄핵할 정도의 사유가 안 된다며 기각했다. 거기에 여야 모두 승복했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따르고 불리한 것은 따르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없다. 대통령이나 국가 기관 등이 헌법을 무시한다면 스스로의 권위와 권한을 부인하는 셈이 된다."

-노 대통령은 "관습헌법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는데.

"성문헌법에 대해 보충적 기능을 갖는 불문의 관습헌법이 존재하고, 이 관습헌법이 법원(法源.법과 제도의 근거)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헌법 교과서의 첫 머리에 나오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이를 처음 듣는다고 했다면 헌법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헌재에 제출한 헌법소원 청구이유서에서 줄기차게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관습상 불문헌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피청구인 측에서 이를 몰랐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이 헌재 결정을 뚫고 나갈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승부수 정치는 어느 한쪽을 좌절하게 만든다. 노 대통령은 수도 이전에 정권의 명운을 건다고 했고, 이를 반대하는 행위 등은 자신에 대한 퇴진 요구로 간주한다고 했다.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현재 국민 생활이 경제적으로 어렵다. 대통령이 이번 결정을 계기로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여권이 헌법 개정 없이 국민투표로 '서울=수도'라는 관습헌법의 변경을 추진한다면.

"헌재 결정은 수도를 바꾸려면 헌법개정안을 만들어 국민투표에 부치라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헌법 쿠데타다."

# "서민들 격려가 큰 힘"

이 변호사는 지난 19일 세미나 참석차 일본 규슈(九州)에 머무르고 있을 때 지인에게서 "헌재 선고가 21일 오후 2시로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당시 직감적으로 위헌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초 헌재 결정이 11월 중순께나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헌재 결정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승리를 확신했다. 마치 무슨 귀신에 홀린 듯 신념 같은 게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태풍이 몰아닥친 일본 규슈에서 부랴부랴 도쿄(東京)로 나와 하루 자고 선고 전날 입국했다. 항공편이 끊겼다면 선고 장면을 못 볼 뻔했다. 결정 선고 직전에 기자들에게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이다. 위헌 결정이 나올 테니 지면을 많이 확보해 두라'고 말했다."

-헌법 소원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우리가 헌법소원을 내자 '야당의 사주를 받아서 한 것'이라거나 '애당초 헌법소원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정치권 진출을 목적으로 추진했다'는 등 근거 없는 음해가 난무했다. 이런 세몰이식 흑색선전에 모멸감을 느꼈다. 특히 다른 조직도 아닌 같은 법조인이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할 땐 절망감마저 느꼈다."

-소송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는데.

"일부 인사에게서는 직.간접적으로 '사건을 당장 때려치우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의외로 시장상인이나 개인택시 기사 등 서민들이 직접 찾아와 격려해 준 게 큰 힘이 됐다. 승소 후 전혀 모르는 일반 시민들이 전화를 해와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며 축하해 줄 때 보람을 느꼈다."

-이번 헌법소원을 이기게 된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지난해 연말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될 때부터 위헌을 확신했다. 처음부터 사실 확인 문제가 아니라 법리 판단의 문제라고 보고 치밀하게 논리를 개발, 서너 차례 청구 이유서를 냈다. 청구 이유서엔 수도 이전으로 인해 천문학적 규모의 국가적 손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김문희 전 재판관이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불문헌법도 헌법 130조의 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를 개발해 지난 8월 마지막 청구 이유 보충서에 반영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불문헌법에 의해 관습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헌재가 이 같은 우리의 주장을 '관습헌법'이라는 용어로 정리, 인용한 것이다."

# "한풀이식 개혁에 국민 피로"

이 변호사는 현재 연세대.서강대 등에서 '헌법과 시장경제'를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는 매달 한 차례씩 일본 도쿄의 게이오대에서 '한.일 양국의 헌법 판례 비교 및 시민운동' 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개혁'에 대한 개인적 소신을 밝혀 달라.

"나는 헌재 재판연구관 등 15년간의 공직 생활기간 중에 진보적 주장을 많이 폈다. 그런데 똑같은 주장을 지금 내가 하면 반개혁적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한쪽에 쏠려 있다. 개혁의 의미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 개혁은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구체적으로 향상시키고, 헌법상의 행복추구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과거 어느 정권이든 개혁을 얘기했다. 그러나 한풀이식 개혁으로 상처받은 건 국민이다. 역대 정권들도 일부 언론이 방해해서 개혁에 실패했다는 등의 핑계를 댔다. 개혁입법 또는 개혁정책이니 하며 국민 혼란을 부추기는 건 옳지 않다. 현재 정략 입법이 국민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가의 추락한 위상을 바로잡고 국민 생활을 다잡는 게 개혁이다. 특정 정파나 집단의 한풀이식 개혁은 더 이상 개혁이 아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헌법정신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국민의 헌법 마인드를 키워주는 일을 하고 싶다. 헌법을 대통령 권한 등 거창한 통치구조에 관한 이론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또 일부 국회의원이 헌법을 폄하하는 발언을 다반사로 한다. 우리 모두 헌법이 일상생활에서 기본권을 지켜주는 생활규범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내년 초께 공익소송센터를 재단법인 형태로 설립, 헌법에 어긋나는 법과 제도를 바꾸는 운동을 할 계획이다. 또 시민.사회단체들의 공익소송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싶다. 돈과 배경이 없고, 법도 모르는 사람들을 조건 없이 돕고 싶다."

조강수 기자

*** 바로잡습니다

10월 25일자 33면 '이슈 인터뷰-이석연 변호사' 기사 중 "헌재 재판관 등 15년간의 공직생활 기간" 부분에서 이 변호사는 헌재 재판관이 아니라 헌재 재판연구관으로 공직 생활을 했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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