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승복 시비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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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애 정치부 기자

주말인 23일 저녁과 24일 오전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토론 프로그램 소재는 같았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한 정치권 논란이 그것이다. 토론 양상도 똑같았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헌재가 관습헌법을 들어 위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여러 차례 "승복하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24일 낮 상황도 비슷했다. 한나라당은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라"는 논평을 냈다. 열린우리당은 홈페이지에 '관습헌법?'이란 그래픽을 전진 배치했다.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지 사흘째지만 정치권은 한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승복 여부를 둘러싼 다툼소리만 크게 울린다.

헌재 결정이 내려진 직후 정부는 바로 법률적 효력이 미치는 행위를 중단했다.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법은 준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승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헌재 결정을 우회해서 반전의 묘수를 찾는 인상을 더 많이 준다. 실제 여권에선 "관습헌법을 적용한 법리적 판단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여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온다. 여권이 승복이란 표현에 그렇게 인색한 것은 그걸 항복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승복은 상생정치의 출발점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헌재 결정을 여권을 굴복시키는 정치적 호기로 이용하려 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충청 지역 주민의 충격을 어떻게 달래고, 지역 균형발전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다. 여당이 오기를 부릴 일도, 야당이 정치공세의 빌미로 삼을 일도 아니다.

열린우리당 의장 비서실장인 정장선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결과에 승복하고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이제는 헌재 결정에 대해 차분히 대응, 후속조치 마련에 국가적 총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제 논의의 초점을 생산적인 쪽으로 옮겨야 할 때다.

고정애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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