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대학 총장 자리는 보은 인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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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경남도는 4일자로 일부 간부공무원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발령자 9명 가운데 이병호 기획조정실장(2급)은 행정과에 대기발령됐다.

이는 이 실장을 거창도립대학 총장에 임명하기 위한 사전 절차로 확인됐다. 김태호 경남지사는 이번 주 이 실장을 거창대 총장에 정식 임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임명 절차의 하나로 자문 역할을 하는 ‘경남도지방교육공무원인사위원회’를 개최하기에 앞서 이 실장을 총장에 내정한 것이다. 이 실장은 연말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특히 거창대 총장임용추천위원회는 추천과정에서 공개채용(공모) 대신 특별채용 방식을 채택, 공정성이 결여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12명인 총장임용추천위원회의 위원 가운데 6명은 경남도행정부지사(위원장), 행정안전국장, 건설항만방재국장, 보건복지국장, 정책기획관, 여성정책과장 등 공무원이다.

이런 임용추천위원회는 지난달 22일과 26일 잇따라 회의를 열어 공모 대신 특별채용을 결정하고 이 실장과 우영환(55)거창대교수 등 2명을 후보로 추천했다. 그러나 회의·추천과정을 보면 이 실장을 임명하기 위한 사전 각본으로 드러나고 있다. 임용추천위원회 회의 이전부터 이 실장이 총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소문대로 임명절차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용추천위원회 위원인 최만림 기획관은 “학기초인데다 대학의 국비 예산확보를 위해 총장임명이 시급해 특별채용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위원 7명 가운데 3명이 경남도 공무원인 지방교육공무원인사위원회도 이 실장 임명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전망이다.

경남도가 거창대 총장에 도 공무원 출신을 임명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사퇴한 오원석(62) 4대 총장도 경남도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2006년 8월 총장에 임명된 오씨는 임기(8월3일)가 남아 있지만 창원·마산·진해 통합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지난달 15일 사퇴했다.

같은 도립인 남해대학도 마찬가지다. 2004년 7월 김웅렬 기획관리실장, 2008년 7월 백중기 기획관리실장이 연이어 제 3, 4대 총장에 임명됐다. 현 백중기 남해대 총장도 사천시장 출마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총장 모두 사퇴 때는 대학 총장 자리가 정계 진출 발판으로 이용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가진 대학교수 등을 공모해 임명해온 김혁규 전 지사와는 총장 임명 과정이 완전 딴판인 셈이다. 이 때문에 “도립대학 총장 자리는 정년을 앞둔 자기 사람 심는 보은 인사용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두 도립대학에는 연간 130억원 안팎의 도 예산이 투입된다.

경남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차윤재(53)상임대표는 “도립대학이 도청 산하기관이라 하더라도 교육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해 교육전문가를 임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총장 자리가 도지사의 자기 사람 자리 나눠주기에 활용돼서는 결코 안 된다”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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