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정지용 50년 9월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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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행방불명돼 그동안 생사가 알려지지 않았던 '민족시인' 정지용(鄭芝溶)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밝힌 북한측 기록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鄭시인은 1902년생으로 내년이면 탄생 1백주년이 된다.

북한이 최근 발간한 『조선대백과사전』 17권에는 '개성적인 민요풍의 시인으로 8.15 이후 진보적 문학운동을 펼쳐온 鄭시인이 50년 9월 25일 사망했다' 고 기재돼 있다. 이 사전은 그러나 鄭시인의 사망원인.장소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鄭시인은 50년 7월 경기도 고양군 녹번리(현 서울 녹번동) 자택에서 후배.제자 문인들과 함께 집을 나간 뒤 실종돼 사망과 관련된 갖가지 추측과 소문이 나돌았었다.

이와 관련, 북한에 살고 있는 鄭시인의 셋째 아들 구인(求寅.68)씨는 95년 6월 북한 '통일신보' 에 "아버지가 북으로 오던 중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기슭에서 미군 비행기의 기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고 밝힌 바 있다.

구인씨는 3차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26일 서울을 찾아 남한의 형과 여동생을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남쪽에 거주해온 큰아들 구관(求寬.73).막내딸 구원(求苑.66)씨는 그동안 鄭시인이 평양교화소(교도소)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믿어왔다.

4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桂광순(90년 사망)씨가 50년 12월 펴낸 회고록에서 "鄭시인이 우익활동 혐의로 50년 7월 북한군에 의해 서대문형무소로 수감됐으며 이후 평양교화소로 이감돼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와 같은 감방을 썼다" 고 해 남측 가족들은 그렇게 믿어온 것이다.

桂씨는 그해 9월 23일 유엔군의 폭격 때 자신은 평양감옥을 탈출했지만 鄭시인은 사망했다고 주장했었다.

또 문학평론가 金양수(68)씨 등은 '鄭씨가 미군 포로들을 학대했다는 이유로 미군에 의해 일본 오키나와에서 총살당했다' 는 주장도 제기했다.

구관씨는 25일 "동생이 아버지에 대한 모든 의문을 풀어주기 바란다" 고 말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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