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두진 '靑山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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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버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틔여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줄 보고지운 나의 사람.

- 박두진(1916~1998) '靑山道'

춥던 겨울바람 산 넘어 가고, 봄바람이 산 넘어 오리라. 그러면 강가에 있는 느티나무는 눈부신 새 잎이 피어 달빛을 부르고, 소쩍새는 찾아오리라.

거칠고 험한 세상을 이기며 가는 것은, 나를 부를 고운 님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리라. 새로 오는 봄 길에 나가 나를 총총총 달려도 와줄 고운 님을 찾아서, 그대에게 나도 가리라. 봄 길을 나서리라.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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