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저금리' 경영] 1. '배드론' 갈아끼기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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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불황 속에 저금리시대가 열렸다. 국고채금리가 연 5%대로, 회사채금리도 6%대까지 떨어졌다.

아직은 금리에 관계없이 돈 꾸기에 급급한 기업들도 많다. 그러나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저금리시대와 마주선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경기와 금리동향을 점치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저금리시대 기업들의 행태와 과제를 진단한다.

SK㈜는 최근 발행금리 6%에 1천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SK는 이 돈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연 17~18%의 고금리로 발행했던 회사채를 털어낼 계획이다. 이번 회사채 바꿔끼기만으로 연간 1백억원 가량의 이자부담을 덜게 된다.

최근 저금리시대가 자리를 잡으면서 크고 작은 기업들간에 회사채 차환발행 바람이 불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이 고금리를 감수하고 발행했던 회사채가 올해 집중적으로 만기가 돌아오는데 저금리를 이용해 이자 부담을 줄이는 '배드 론(Bad Loan) 갈아끼기' 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외환위기 직후 연 20% 안팎의 고금리로 발행된 회사채 규모는 약 20조원 정도. 회사채 기준금리가 24%로 치솟았던 97년 12월부터 16.6% 수준으로 다시 떨어진 98년 6월까지 발행된 회사채가 이에 해당된다.

LG투자증권 성철현 채권트레이딩 팀장은 "올들어 금리가 떨어지고 회사채 발행 대상기업도 신용등급 A급에서 BBB급까지 확대되면서 외환위기 때 고금리로 발행했던 회사채를 차환발행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고 말했다.

올들어 1월 중 회사채 발행은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순발행을 기록했고, 2월 들어서도 순발행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현대건설.전자 등의 회사채 신속인수분을 제외한 BBB등급 회사채 발행규모는 지난해 11월 7백억원 수준까지 하락했으나 12월 5천5백80억원, 올해 1월 6천3백90억원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AA등급 이상인 일부 우량기업의 경우 해외 차입금리는 지난해 말(환 리스크를 뺀 금리가 6~7%) 이후 변하지 않은 반면 회사채 발행금리는 10% 안팎에서 6%대로 떨어졌다.

전례가 없는 국내외 금리 역전현상이 발생한 셈이다. 이에 따라 일부 우량기업은 해외차입과 국내 회사채 발행간에 조달금리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 저금리 효과 짭짤〓회사채 금리차에서 거두는 재테크의 효과는 기업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장난이 아닌' 수준이다.

예컨대 신용등급이 AA급인 SK는 일단 올해는 2, 3년 전 발행한 고금리 회사채를 저금리로 바꾸는 것을 당면과제로 잡고 있다.

SK의 올해 회사채 만기 도래 규모는 전체 발행액(지난해 말 기준 2조6천억원)의 절반 가량인 1조5천억원. 이 중 6월까지 만기가 되는 3천억원은 금리가 16%가 넘고, 7월 이후 만기분(1조2천억원)도 연리 11~12%다.

SK 장진원 IR팀장은 "회사채 차환발행에서만 최소 연간 5백억원 이상의 이자부담을 덜 것" 이라며 "SK가 지난 한햇동안 거둔 순이익 2천억원의 25%를 저금리 덕분에 챙기는 것" 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도 지난해 말 연리 8%짜리 회사채 1천5백억원어치를 발행하면서 자금부문의 한해 장사가 끝났다는 분위기다.

이 돈으로 올 1월 만기된 1천7백50억원의 회사채(98년 1월 발행, 금리 13.8~14%)를 갚아 연간 이자부담 80억원을 덜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도 올해 1월초 7%짜리 회사채 3백억원을 발행해 97년 12월 말 25%로 발행했던 회사채를 갚았다.

◇ 단기 빚을 장기로〓이참에 3개월짜리 기업어음(CP)등 단기부채를 3년짜리 회사채로 바꾸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회사채보다 만기가 긴 외화차입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회사채 5백억원을 발행, 은행대출(5백억원)과 CP(7백억~8백억원)를 갚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김관수 차장은 "자금운용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기자금을 장기자금으로 전환하고 있다" 고 말했다.

SK㈜는 만기가 최장 10년까지 가능한 해외차입을 올해 1~2차례 시도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최근 외국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설명회(IR)를 하고 있다.

기업들의 이같은 재무테크는 회사채 차환발행뿐만 아니라 은행대출.기업어음 등으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기업어음의 경우 지난해 말 7%대였던 금리(3개월물 기준)가 최근 5.5~6.5%로 낮아져 금리차익을 보려는 발행물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있다.

이용택.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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