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전력 비상사태 한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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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미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난이 결국 주정부가 전력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크게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다.

전력비상사태가 꼭 한달을 맞던 지난 16일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는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이 대책의 주요 골자는 주정부가 부도위기에 몰린 3개 전기회사 송전시설의 60%를 매입하고, 전기회사들은 매각대금으로 빚을 갚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주정부는 다음날 전력비상사태를 강제 단전조치가 가능한 3단계에서 학교.공장 등이 전기료를 할인받는 조건으로 자율 단전하는 2단계로 낮췄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데 따른 것이 아니라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19일)' 로 이어지는 사흘 연휴를 앞두고 취해졌다.

따라서 근로자들이 연휴를 마치고 다시 직장과 공장으로 돌아오면 3단계 조치로 환원될 가능성이 있다.

◇ 전기공급자로 나선 주정부〓당장 다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고 보고 주정부가 직접 전기시장에 개입키로 했다.

종합대책의 골자는 1백20억달러의 부채를 안고 사실상의 부도상태에 빠진 태평양가스전기사(PG&E)와 남가주에디슨사(SCE)와 역시 자금난이 심한 샌디에이고가스전기사(SDGE)의 송전시설을 매입, 주정부가 직영한다는 것이다.

대신 이들 회사는 송전시설 매각대금으로 빚을 갚도록 한다는 것이다. 1996년 단행한 전기시장 자율화조치가 실패했음을 분명히 인정한 것이다.

현재 이들 회사의 송전선은 총 5만1천㎞인데 장부가격(30억달러선)과 시가(70억~90억달러)의 차이가 커 양측이 어느 선에서 타협할 지는 미지수다.

반대의견이 많긴 하지만 이 대책은 어렵지 않게 주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주당이 주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데이비스 주지사 또한 민주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 완전 해결까지는 먼 길〓이번 조치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불가피한 면을 인정하더라도 주정부가 전면에 나선 것은 역시 일반적인 민영화 추세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간회사의 부실경영 책임도 있는데 이런 것까지 모두 공채발행으로 메워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PG&E마저 성명에서 "어떤 대책도 주주와 소비자들에게 공평해야 한다" 며 "주정부의 이번 대책은 이런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PG&E와 SCE는 즉각적이고 대폭적인 전기료 인상만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캘리포니아 공공시설위원회(CPUC)를 상대로 연방법원에 전기료 인상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는 상태다.

CPUC는 지난달부터 4월까지 세달동안 전기료를 7~15%만 인상토록 허용했었다.

◇ 주민들 반발〓주민들과 공화당측의 반발이 거세다.

앞으로 주정부가 발행할 전력공채(1백억달러)와 전기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발행할 채권 등을 합칠 경우 2백억달러에 달하는 부담이 결국 주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1년 뒤면 전기료 동결조치가 해제돼 전기료 폭등은 이미 예고돼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미 서부지역의 전력난은 발전시설 확충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처방이 나오기 어렵다.

데이비스 주지사가 부시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발전소 증설을 위해 환경보호규정을 완화해줄 것을 요청한 것도 이런 것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환경규정 완화문제는 연방정부의 긍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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