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아미티지와 입양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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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 국무부 부장관지명자인 리처드 아미티지는 전형적인 무인(武人)타입이다.

떡 벌어진 어깨, 부리부리한 눈매, 곧추세운 '자라목' 은 휘하 병사들을 향해 "돌격 앞으로" 를 외치는 전장(戰場)의 지휘관을 연상시킨다.

그는 사실 해군사관학교를 나왔고, 베트남전에 참가해 '지옥의 묵시록' 을 몸소 체험했다. 유일한 취미가 역도다.

같은 군인 출신으로 아미티지 부장관과 둘도 없는 사이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비망록에서 그에 대한 첫인상을 이렇게 적고 있다.

"거구에 반짝이는 대머리는 모루처럼 단단하게 생겨서 다음 주 토요일에 열리는 세계레슬링대회에 나가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

그의 생김새만 놓고 보면 부시 행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이 어디로 갈지 뻔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될 게 사람이다.

아미티지 부장관은 8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그중 6명이 해외입양아다.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서 온 아이들로 버지니아에 있는 그의 집은 하나의 '작은 세계' 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부장관 정식지명이 늦어진 것도 연방수사국(FBI)이 입양아들의 생부모 관계를 조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탓이라는 것이다.

'고아 수출국 1위' 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아미티지의 두 얼굴 앞에서 할 말을 잊게 된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해외에 입양된 한국 어린이는 14만명에 달한다. 국내 입양아의 두배가 넘는 숫자다.

입양이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로 여겨지는 미국에 가장 많은 8만명이 입양됐다.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면서 국내 입양아 수가 점차 늘고 있다지만 여전히 해외입양아 수에는 못미치고 있다.

며칠 전 프랑스 TV 채널 가운데 하나인 '아르테(ARTE)' 는 한국 입양아의 '뿌리찾기' 과정을 다룬 1시간반짜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네살 때 프랑스에 입양돼 2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소피의 눈에 비친 한국은 이해가 안되는 것투성이인 낯선 땅이다.

단란주점과 러브호텔의 휘황한 네온사인을 '이방인' 의 정체성 혼돈과 대비시키면서 은연중 한국사회의 실종된 윤리와 책임을 꼬집는다.

한국에서 해외에 입양되는 아동의 90%가 미혼모가 출산한 아이들이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보다 경제적으로 키울 능력이 없어 아이를 버리는 미혼모가 많다.

소피가 가장 이해하지 못한 것도 가난 때문에 모성을 포기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이다. 아미티지의 자비심에 언제까지 기댈 것인가.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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