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총재-YS·JP 미묘한 관계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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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 지난 15일 오후 4시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질문의 정부측 1차 답변이 끝나자 의석에 있던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JP는 평소처럼 곧장 우측 통로로 퇴장한 게 아니라 회의장 중앙에 위치한 한나라당 의석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의석 맨 뒷줄에 앉아 있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뒤편으로 다가서 갑자기 李총재의 어깨를 양손으로 몇번 주물렀다.

깜짝 놀라 일어선 李총재는 JP와 30초 정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등의 수인사를 나눴다.

#2. 비슷한 시간에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발간됐다.

책에는 "이회창 총재가 총리 시절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는 월권행위를 해 파면시켰다" 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 고 사정하던 李총재는 한시간 가까이 혼난 뒤 집무실을 나가면서 출입문도 찾지 못해 허둥댔다" 는 대목도 담겨 있다.

李총재는 16일 이같은 내용을 전해 듣고는 "가당치 않은 일" 이라고 말했다고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이 밝혔다.

이처럼 최근 李총재와 YS.JP의 관계가 미묘하게 얽히고 있다. 최악의 상태였던 JP와는 관계 개선의 징후가 뚜렷하다.

JP는 측근들에게서 "져주면서 이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는 李총재의 14일 발언을 보고받고 "좋은 일이야" 라고 만족스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JP는 지난 10일 "李총재가 져주면서 이기는 게 야당 정치의 요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고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자민련에선 "본회의장에서 JP가 보인 파격적인 행동은 李총재의 화답에 대한 답례 성격" 이라고 해석했다.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친 것뿐인데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고 했지만 당내에선 李총재가 'JP 끌어안기' 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JP는 이날 점심 때 63빌딩 거버너스 챔버에서 한나라당 김진재(金鎭載)부총재를 만나 현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YS와는 계속 꼬여만 간다. 權대변인은 YS의 회고록에 대해 "현존 인물에 대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을 쓰는 것은 문제를 일으킨다" 고 반박했다.

다만 李총재 주변에선 "여러 돌발 변수에도 불구하고 YS와의 관계 개선을 꾸준히 추진하겠다는 李총재의 의지는 분명하다" 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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