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갓난애 죽인 '얼음피 이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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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중국 후난(湖南)성에서 갓난 여자아이를 길가에 버려 얼어죽게 만든 사진이 영국 데일리 미러(Daily Mirror)에 보도돼 충격을 주고 있다.

미러의 생생한 사진이 던져주는 슬픔은 비단 갓난아이가 버려졌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지나가는 수많은 행인들이 어린 생명을 소가 닭 보듯 지나쳐버리는, 그 참혹한 무관심이 더욱 보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사람의 목격자가 필름에 담은 '고발장' 은 영국은 물론 중국 대륙에까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이 보도되자 세계의 인권단체들은 즉각 중국 당국의 사실 규명과 기아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홍콩신문들도 이 사진을 1면 머릿기사로 다루면서 영국과 중국의 반응을 곁들이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되는 아기(The baby we can' t ignore)' 라는 제목으로 미러에 실린 6장의 사진은 잠재적 경제대국 중국의 치부와 다름 아니다.

아이 시체 옆을 지나가는 자전거.버스, 딴청을 피며 외면하는 행인, 흘낏 보고 돌아서는 노점상 등등. '얼음 피를 가진 이웃' 들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 내 아이는 거의 발가벗겨진 채 도로변 하수구 앞에 버려져 있었다.

미러 편집자인 데이비드 레이에 따르면 촬영자는 한 여성 여행객. 촬영장소는 후난성 내 작은 읍(小鎭)으로 이 여성은 3시간30분에 걸쳐 비정(非情)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레이는 사진 제보자의 말을 인용, "촬영 당시는 출근시간이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적지 않았다" 며 "이 가운데 잠깐 멈춰서서 눈길을 던지는 사람조차 소수였으며 대부분은 못본 듯 지나쳤다" 고 말했다.

레이는 홍콩신문들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사진 제공자의 신변안전을 위해 이 사진이 언제, 어디서 촬영된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다" 고 말했다.

사진 보도의 파장은 컸다.

홍콩인권연합회 허시화(何喜華)주석은 15일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에서 여자 아이가 버려진 채 얼어죽었다는 소식은 중국 내 한자녀 갖기 운동과 남아선호 풍조가 빚은 비극" 이라고 규정하고 "인간 목숨이 한마리 돼지값만도 못한 중국의 현실을 개탄한다" 고 말했다.

비난 여론이 올라가자 런던 주재 중국대사관측은 '유관기관에 이미 이 문제를 통보했으며 이른 시일 내에 사건 전말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는 성명서를 냈다.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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