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미국의 갑부들…상속세 폐지 추진 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상속세를 없애면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갑부들 자녀들만 살찌게 할 것이다."

"상속세가 사라지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려받은 게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식의 귀족사회가 되면 안된다. " 급진적인 평등주의자나 사회 하층계급의 불평이 아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억만장자들이 이런 말을 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의 갑부 1백20명이 상속세를 폐지하면 안된다는 대대적인 운동을 시작했다고 14일자 1면 기사로 보도했다.

이런 움직임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1조6천억달러 감세안을 내걸고 2009년까지 상속세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운동에 서명한 사람들의 명단이 깜짝 놀랄 만하다.

헤지펀드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 석유왕 록펠러의 후손인 데이비드 록펠러 가족, 월가를 대표하는 투자가 워런 버핏, 억만장자 아그네스 군드 등 하나같이 쟁쟁한 부자들이다.

이들 갑부는 오는 18일엔 뉴욕 타임스의 의견 난에, 그 뒤에는 다른 신문들에도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대대적인 광고를 낼 계획이다.

부자들이 속으론 상속세 폐지를 좋아하면서 체면치레로 한번 해보는 행동이 아니란 의미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는 "상속세를 폐지한다는 얘길 듣고 너무 화가 났다" 며 "회사일만 아니라면 백만장자들 압력단체를 만들려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이들이 상속세를 폐지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다양하다.

우선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것. "만일 상속세를 없애면 그 부족한 재원만큼을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걷어야 한다.

사회복지나 의료보험을 축소하고, 환경개선을 소홀히 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게 된다" 는 주장이다. 철학적 차원의 주장도 있다.

워런 버핏은 "나는 죽으면 재산 전부를 사회에 환원할 것" 이라며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선 67만5천달러 이상부터 약 37%의 상속세를 물어야 하고 3백만달러가 넘으면 세율이 55%를 넘어간다. 부시 대통령은 우선 2006년까지 면세기준을 67만5천달러에서 1백만달러로 늘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대표하는 부자들은 "그러면 건강한 민주주의가 안된다" 고 반발한다. 미국이 부자들이 존경받는 건강한 사회가 된 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뉴욕〓신중돈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