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도 더불어 살아야할 이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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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덕수궁 돌담길이 끝나는 서울 중구 정동의 구세군 중앙회관 별관.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오르면 네평 남짓한 다락방이 있다.

벽은 노숙자와 관련한 각종 유인물.연락처.신문스크랩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의회 사무실이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안 풀리네요. 이번 겨울은 실직 노숙자들이 견디기에는 너무 추웠어요. " 정은일(40.목사)사무국장을 비롯한 '노숙자의 벗 5인방' 은 "노숙자가 사라지는 날을 꿈꾼다" 고 했다. 그래서 전실노협도 더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어지기를 바란다.

전실노협이 발족한 것은 IMF 한파가 봄을 앗아가 버린 1998년 4월. 기독교.천주교.불교의 대표적인 종단과 경실련이 "거리의 노숙자를 일단 먹이고 재우자" 며 뜻을 모았다.

정부를 설득하고 성금을 모아 '쉼터' 를 만들기 시작했다. 거리를 배회하며 지하도에서 신문지를 이불삼아 잠을 청하던 노숙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 1백70개 쉼터에서 내일을 기약하고 있는 노숙자는 모두 5천2백31명(2000년12월31일 기준). 지난 98년의 7천~8천명 수준에서 상당히 줄었다.

丁사무국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이 마음 아프다" 고 했다.

쉼터의 노숙자가 지난해 10월 4천5백32명에서 11월 4천7백67명, 그리고 12월에 5천명을 다시 넘었다는 것이다.

"강추위로 지하도에서 옮겨 온 노숙자도 있지만, 장기간 경기 침체로 새로운 노숙자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쉼터의 노숙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 겨울에 아직도 1천여명이 거리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으로 전실노협측은 집계했다.

홈페이지 담당 변미성(27.여)씨는 "최근 쉼터에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 엄두가 안나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고 했다.

실직 노숙자 외에 노인.장애인.알콜중독자.모자 가정이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가 정부가 떠안아야 할 사회안전망에서 탈락한 사람들이다.

이들 5인방의 고민은 노숙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다.

丁목사는 "실직 노숙자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이웃" 이라고 말한다.

무한경쟁속에 언젠가 우리들도 거리를 헤메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활사업을 돕는 고연미(30.여)씨는 노숙자에게 '거리에서 사회로 가는 징검다리' 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각종 재활.자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전실노협의 5인방은 올해 미국의 전국노숙자지원연합(NCH), 일본의 야숙.인권자료센터와 협조할 생각이다.

노숙자는 '인권 문제' 라는 인식에서다. 아무리 노숙자라도 인간으로서 최소한 굶주리지 않고, 의료서비스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홈페이지 연락처 02-734-8643~4

글=박종권,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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