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넷키즈] 中. 탈선 치닫는 채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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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에 체류 중인 미국 기업인 A씨는 얼마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글 연습도 할 겸 한국 청소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 화상 채팅 사이트에 들어가서다.

A씨가 자신을 소개하는 캐릭터로 장난삼아 예쁜 여자 그림을 선택하자 1대1 대화를 요청하는 남학생들의 메시지가 계속 날아들었다.

급기야 한 학생은 화상을 통해 자신의 알몸을 '생중계' 하기 시작했다.

A씨는 "한국에서 채팅을 통해 유익한 대화를 나눈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 했다.

모르는 사람끼리 컴퓨터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채팅. 그러나 원조교제에서 성폭행.폭력.갈취 등 흉악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타락의 함정으로 변질된지 오래다.

◇ 난무하는 음란 대화〓7일 자정 한 인터넷 사이트 화상 채팅방. '내 ○○ 볼 캠녀만' '화끈하게 벗어보자' '쇼걸 환영' 등 음란한 문구를 앞세운 채팅방들이 즐비했다.

15세의 남학생은 '○○ 보여주실 분 없나요' 라며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초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건전한 토론.대화가 주를 이루던 채팅방들이 변질되기 시작한 건 2년쯤 전.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원조교제라는 성범죄가 고개를 들면서부터" 라고 말한다.

◇ 원조교제의 함정〓지난달 상습 원조교제를 하다 경찰에 붙잡힌 중3년생 H양이 처음 채팅을 접한 건 지난해 12월 초. PC방에서 채팅을 하던 H양은 대학생 朱모(22)씨를 만나게 됐고 성관계까지 갖게 됐다.

평범한 중학생인 H양은 "원조교제가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이라는 朱씨의 말에 넘어가 가출, PC방을 전전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H양은 이후 10여명의 남자와 원조교제를 해왔다.

W대 3년 吳모(21)씨는 친구와 함께 20대 회사원을 폭행하고 금품을 뺏은 혐의(특수강도)로 8일 경찰에 붙잡혔다.

여자친구 K양(18.고2)이 채팅을 통해 알게 된 회사원 金모(22)씨를 며칠 전 만난 吳씨는 "내 친구(여)가 당신에게 성폭행당해 상처를 입었다" 고 주장하며 때리고 현금 등 6백30여만원을 빼앗았다.

K양은 지난 2일 새벽 몇마디 채팅을 주고받은 金씨와 그날 바로 만났었다. 7일에는 여중 3년생과 원조교제를 한 취업정보회사 대표인 文모(34)씨 등 7명이 무더기로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경찰청이 지난해 적발한 10대 소녀 원조교제는 모두 2백82건. 이중 절반이 넘는 1백51건이 채팅에서 시작됐다.

강주안.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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